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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이야기

잉카제국에 대한 두번째 글

by 이은주 2019.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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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글에서는 잉카제국에 대하여 글을 작성하였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잉카제국에 대한 글을 이어서 쓸 것이다 

그럼 시작해보겠다 잉카의 9번쨰 왕조 파차꾸끼 잉카 유빵끼가 1445년 띠띠까까 지역을 정복했다 파차꾸띠 잉카 유빵끼는 잉카의 문명과 정복지역의 문화를 잘 융합하여 발전시켰다 이름은 참 어려운듯하다 치무 문명이 그의 좋은 예이다 파차꾸띠는 왕실의 인재들을 훈련시켰다 그는 청동 전투 도끼 끝은 돌이나 청동으로 장식된 나무 막대 투석기 창 던지는 창 활과 화살 가죽으로 덮어씨운 나무방패 면이나 등나무류로 만든 헬멧 그리고 누빈 갑옷으로 군대를 중무장 시켰다 군대의 무기는 중요한것으로 잉카 공직자들은 각각의 함락된 지역에 파견되었다 함락된 지역관리자의 아들을 인질로 잡아 꾸스꼬로 데려 감으로써 각 지역 관리자들에게 충성심을 요구 할수 있었다고 한다 꾸스꼬는 아래에 다시 설명하겠다 파차꾸띠는 퀘차를 공식언어로 선포하였고 함락된 디역의 종족들이 태양신을 섬기로 종용하였다 생산력등을 증대시키기 위해 그리소 관개와 계단식 농업의 속도를 올리기 위해서 함락국의 노동력을 이용하였으며 농토를 비옥하게 하기 위해 페루 서해안의 섬에 있는 해조의 똥이 퇴적 경화하여 생긴 천연비료를 사용하기도 하였는데 이 시대에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였는지 신기하다 잉카 정부는 모든 사람들엑세 태양신을 섬길젓을 강요하는 권위적이고 엄격한 정부였다 그들은 신전과 요새 그리고 북 키토 에콰도르인 에서 중앙 칠레 딸까까지 이어지는 3250마일이나 되는 도로를 만들었다 이 도로는 제국의 힘을 유지하는데에 요긴하게 쓰이기도 하였지만 후에 아이러니컬하게도 스페인 정복자들이 잉카제국을 쉽게 정복하는 주요원인이 되었다 아무래도 군이동도 쉬워져서 일것이다 어쩄든 잉카 제국의 통치자와 그의 수행원들을 위해서 매 4.5마일 마다 도로를 수리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매 12마일마다 휴게소 혹은 땀보라 불리는 객사가 존재하였다 또한 잉카 제국의 전령 챠스퀴스가 쉴수있도록 매5마일마다 작은 우체국이 있었다 한명의 차스퀴스는 하루에 약 150마일을 달힌 후에 교체되어진다 구두전언은 결승문자나 매듭문자로 보충되었다 이는 고대 유럽에서 사용되던 탤리스틱과 비슷하다 잉카제국의 모든 사람은 살기 위하여 일을 하여야만 했고 심지어 귀족들도 솔선 수범일을 하였다 그러나 고고학자들은 오히려 이것을 잉카제국이 두계층의 조직구조로 이루어져있음을 뒷받침하는 근거 파까뗴라고 주장한다 일반  사람들이 법을 어겼을떄 받는 형벌은 관리들의 그것보다 덜 엄격하였다 이것은 잉카 제국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상위계층의 중요성을 강조한 예이다 어디서나 계층은 당연히 존재한다 그럼 이번에는 황제 호칭에 관해 알아보겠다 잉카제국의 군주는 사파 잉카 케추아어로 유일한 왕이라는 뜻으로 칭호로 불렸다 이는 보통 황제로 번역된다 5대까지는 제1왕조 6대부터가 제2왕조이다 제국으로써 성립된 시기는 9대 제2왕조 4대 파차쿠티크의 떄이다 제2왕조 8대인 13대 아타 왈파의 대에서 제국은 멸망하나 이후 잔존 세력이 남아 스페인에 저항을 계속하였다 14대 부터라고 한다 그럼 앞서서 꾸스꼬 왕조에 대해 설명한다고 했는데 시작하겠다 꾸스꼬 왕조의 첫번쨰 왕족은 망꼬 카팍이다 잉카 사람들은 약 12세기 경 꾸스꼬에 작은 도시를 세우며 잉카 문명의 싹을 피웠다 1438년 경 사파잉카 유일한 왕 파차꾸따 꾸시 유빵끼는 꾸스꼬 주변 지역을 정복하기 시작하였다 명칭도 어려운데 파차꾸떅이란 명칭은 그가 현재의 아푸리맥인 찬까스를 정복한 후에 붙여졌다 그와 그의 아들 뚜팍 유빵끼는 안데스 산맥 대략 현재의 페루와 에콰도르 의 상당부분을 잉카 제국의 통치하에 복속시켰다고한다 그럼 이 글까지 잉카제국에 대한 글을 마무리하겠고 조금더 이어서 오늘 얼핏 본 글 중에서 아즈텍 문명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서 더 알아보기로 하였다 아즈텍 문명은 아즈텍 시빌리제이션 또는 아스테카 문명은 지금의 멧기코 지역에 존재하던 아즈텍인들이 만든 문명으로 수도는 멕시코 중부의 텍스코코 호 중앙의 인공섬에 있는 테노치티틀란이었다 마야문명의 양향을 받아싿다 1519년 11월에 에스파냐의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가 수도 테노치티 틀란에 들어갔다 아즈텍 제국의 통치자였던 몬테수마 2세는 백인인코르테스와 그의 무리를 아즈텍 문명의 전설에 나오는 깃털 달린 뱀 전설의 동물인듯 케찰코아틀로 여겨 환대했으나 내부의 정치적 위기를 이용한 코르테스의 계략으로 1521년 코르테스의 군대에게 정복당했다 아즈텍의 주민들인 아즈택인들은 14세기에서16세기에 이르기까지 멕시코에서 높은 수준의 문화를 이루며 살던 원주민이다 나아틀어를 썼다 그 외에도 틀락스포칼인 텍스코코인 등의 다양한 민족이 뒤섞여있었다 또한 아즈텍인들은 정복한 지역들을 아즈택 제국의 주요 종족이었다 아즈텍인 틀락스포칼안 텍스코코인과의 삼각관계를 유지하면서 나라를 다스렸다 역시 관계를 유지하는것이 중요한것으로 보인다 정복한 지역에서 살던 주민들은 아즈텍 제국에 공물을 바쳐야 했다 이러한 아즈텍이란 말은 나우아틀어로 아스틀란의 사람이란 뜻의 단어에서 어원이왔다고 한다 아즈텍에는 계급이 존재하는데 아즈텍 사회는 절대적인 계급 사회로 맨위에 클라토아니 그아래 피필틴 그 다음에 시민 마세우알틴이있다 마세우 알틴은 복종이란 뜻이었지만 행동은 자유로워싸다 마세울틴 계급은 약 100여개의 가정으로 이루어진 카폴리로 구성되어있었다 각 카폴리에는 시민등록을 받고 공동소유의 땅을 관리하며 세금을 모으는 노인 협의회가 있었다 여느나라와 마찬가지로 왕과 귀족평민과 노예 등으로 볼수있는데 이 내용은 다음 글에 이어서 서술할것이다 이번글은 저번글까지 작성하였던 잉카제국에 대한 이야기와 아즈텍 문명에 대하여 서술하였는데 다음글은 아즈텍의 계급 중 왕과 귀족 평민과 노예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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