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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이야기

적벽대전에서의 실제와 허구

by 이은주 2021.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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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글까지는 소설 삼국지에서 젹벽대전을 어떻게 다루었는지에 알아보았다면 지금 쓰게될 글은 적벽대전에서의 실제와 허구 논란에 대해서 알아보고 적벽대전에 이어지는 남군전투와 합비전투에 대해서도 알아볼 예정이다 삼국지 바로읽기에서 적벽대전의 허구설이 나온바가 있다 김운회 교수는 그의 책에서 적벽대전과 관도전투를 비교하면서 위서엔 기록이 세줄에 불과하고 촉서나 오서를 합하여도 70자에 불과하기 떄문에 정사에 남겨진 양이 매우 짧다는것을 근거로 적벽대전의 허구성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오나라쪽 정사를 살펴보면 전쟁에 대한 기록이 풍부하게 남아있으므로 허구논란은 근거가 부족하다는 견해이다 하지만 일부 장수의 경우에는 적벽대전에서 사망하거나 참전하지 않았는데에도 불구하고 연의의 영향으로 참전한것으로 알려져있는 경우가 있다 태사자가 그 대표적인 예로 태사자가 적벽대전에 참전했다는것은 완전하게 허구로 볼수있다 태사자는 206년에 풍토병으로 사망하였기 떄문이다 그러나 삼국지 연의에서는 이미 사망한 태사자를 적벽대전에 참가한것으로 묘사하고있다 정사에 오서 태사자전을 보면 태사자의 최후를 아래와 같이 기술하고 있으므로 태사자의 적벽대전 참전은 완전한 허구라고 볼수있다 지금부터는 그럼 태사자에 대한 정사에 있는글을 보면 태사자는 신장이 7척 7촌 177.1cm이며 수염이 아름다웠고 팔은 원숭이 처럼 길며 활을 잘 쏘아 백발백중이었다 과거의 평균키를 생각하면 꽤나 장신인듯 하다 태사자는 일찍이 손책을 따라 마보의 적을 토벌하러 갔었는데 그 중 어떤 적이 군영 안의 망루 위에서 욕을 하였다 그 도적은 손으로 누각의 기둥을 잡고 있었는데 태사자가 활을 끌고 그를 향하여 활을 쏘았다 화살은 손을 관통하여 기둥에 박히자 밨에서 포위하고 있던 모든 사람들은 그를 칭찬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의 훌륭한 활솜씨 묘기는 이와 같았고 조조는 태사자의 명성을 듣고 편지를 써서 상자속에 편지를 봉했는데 태사자가 열어보니 말하는바가 없고 단지 당귀가 쌓여있을뿐이었다고 한다 손권이 정사를 통솔한 후 태사자에게 유반을 제압할 힘이있었으므로 남방의 일을 맡기도록 하였다 태사자는 41세의 나이로 건안 11년 206년에 세상을 떠났다 아들인 태사향은 윌기교위라는 관직까지 오르게 된다 여기까지가 정사에서의 태사자에 대한 기록이고 적벽대전에서 참전한 장수들 중 태사자 마연 장의 모개의 참전은 삼국지연의 즉 소설에서의 각색이다 그러므로 실제 적벽대전에서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라고 할수있다 여기까지가 관도대전 이릉대전과 함께 3대 대전이라고 할수있는 적벽대전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정사에서의 기록 그리고 관도대전의 배경 준비과정 전투경과 전후 소설에서의 적벽대전이야기 실제와 허구논란까지 나름 자세히 알아보았고 몰랐던 점도 알게 되어 좋았다 그럼 적벽대전에 이어서 나오는 조조와 손권의 1년간의 전쟁인 남군전투와 합비전투에 대해 간단히 알아볼것이다 남군전투는 적벽대전에서의 패배 후 208년 형주에서의 조조의 세력이 약해진 틈을 타 유비와 손권이 형주의 남군 양양 이릉 등을 습격하여 조조군과 교전을 벌여 형주를 탈환하였다 먼저 삼국지 연의에서의 묘사를 보면 연의의 남군전투인 장판 전투 후유비와 손권은 동맹을 맺고 208년 적벽대전에서 조조의 83만 대군을 거의 전멸시킨다 조조는 몇기의 군사들만 데리고 겨우 근거지인 허창으로 빠져나가서 군마를 재정비하고 이 틈을 타서 유비와 손권은 형주를 탈환하기로 결정한다 이에 조조는 군사 5만명을 내어서 남군은 조인에게 합비를 장료에게 양양을 하후돈 이릉을 조홍에게 맡긴다 이름값있고 믿고 아끼는 장수를 택한것 같다 정사에서의 남군 전투기록은 적벽에서의 승기를 탄 주유는 남군을 지키고있던 조인을 쳐서 형주를 뺴앗으려고 하는데 조인이 분전하여 주유는 조인과 1년이나 되는 진흙탕 싸움을 펼치게 된다 보통 게임이나 미디어에서의 조인보다 실제 조인은 참고로 조조군의 에이스라 할만큼 대단한 장수였다 전투과정은 먼저 주유의 부하 장흠 서성 정봉이 군사 5000여명을 이끌고 남군을 공략하였고 이에 조인은 부하 우금을 내어 상대하게 한다 그러한 우금이 정봉의 계략에 말려들어 포위당하자 결국 조인은 직접 군사를 이끌고 나가 서성을 무찌르고 우금을 구출하고 동생인 조순과도 합류하여 혼전을 벌인 끝에 장흠을 대패해 진지로 후퇴한다 주유는 장흠을 죽이려 했으나 여러장수들의 만류로 그만두고 부하 감녕에거 군사3000여명을 주어 이릉의 조홍을 공격하게 하였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조인은 부하 진교와 상희하여 동생 조순과 부하 우금에게 군사를 주어 조홍을 돕도록 하였다 첫전투에서 감년은 군사들을 이끌고 조홍을 무찌르며 손쉽게 이릉성을 탈취한다 하지만 다음날 조홍이 조순 우금의 지원군과 합류하여 이릉성을 포위하자 이에 크게 놀란 주유는 부하 능통에게 1만여명의 군사를 내어 진지를 지키제 한다음 부하 여몽 한당 주태와 함꺠 직접 이릉성으로 진군한다 주유는 부하 주태를 내보내 기습하고 조홍조순 우금은 조인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군사를 재정비하지만 주유의 계략에 말려들어 크게 패하고 만다 주유는 남군성 바로 아래까지 추격하여 성문이 열린것을 보고 곧바로 들어갔으나 주유도 조조의 계략으로 크게 패하고 활을 맞어 부상을 당한다 서성과 정봉의 도움으로 겨우 탈출한 주유는 부상을 치료하고 부하 정보를 시켜 진영의 방비를 단단히 하였다 이에 조인의 부하 우금이 싸움을 걸었으나 이에 응하지 않고 이에 조인이 직접 대군을 이끌고 나와 주유에게 싸움을 건다 주유는 부하 반장을 내보내어 맞서싸우게 하였으나 부상의 악화로 쓰러진다 주유는 돗 자신이 죽었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이에 속은 조인 조홍 조순 우금 등은 진교에게 성을 맡기고 주유의 영채를 습격하지만 곧 주유의 부하인 한당 장흠 반장서성 주태 정봉 진무 여몽 등에게 역습을 당해 포위당하고 궤멸되어 조인은 겨우 부하 10명만 데리고 조홍과 함꼐 남군성 부근에 당도한다 주유의 계책이 대성공한것이다 주유의 부하 능통과 감녕이 길을 막아 결국 남군성에 가지 못하고 하후돈이있는 양양성까지 달아났다 주유는 정보와 함꼐 남군성에 입성하려 하였으나 유비의 참모인 제갈량이 부하 조운을 시켜 미리 손을 써 진교를 끌어내서 남군성을 점령한다 이에 주유는 격분하여 남군을 공격하였으나 패배하고 제갈량은 또 다시 수를 써 형주성에서 남군성이 위태로우니 원군을 보내달라는 거짓정보를 보내서 끌어낸 다음 장비를 시켜 성을 점령했고 양양성에서도 역시 조인이 구원을 요청했다고 거짓정보를 보내어 하후돈을 끌어낸 다음 관우를 시켜 점령한다 주유의 노력을 제갈량의 계책으로 다 가져간것이다 쓰다보니 글이 길어진 관계로 이번 글은 여기서 끝마치고 다음글에서는 이어서 정사 삼국지에서의 남군전투와 결과 및 영향에 대하여 알아볼것이다 나도 연의에서의 내용만 알고 있어 정사에서의 이야기도 기대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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