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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이야기

적벽대전에 대하여

by 이은주 2021.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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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글에는 저번글에 작성한것처럼 적벽대전을 다루어 글을 쓸것이다 워낙 유명하고 다양한 매체 게임 드라마 영화 등에서도 다루고있기도 하고 더 자세히 알면 좋다고 생각해서이다

 

적벽대전은 앞서 작성한 관도대전 이릉대전과 함께 삼국지 3대 대전이라 할만큼 크고 유명한 전투이다 중국의 삼국시대 통일을 목표로 세력을 계속 강대히 나가던 조조에 대항하여 손권과 유비 연합하여 양자강에서 벌어진 큰 전투이다 그럼 우선 정사에서의 적벽대전을 알아보겠다 정사에서는 매우 간략하게 전해지는데 삼국지 위서 무제기에는 조조는 적벽에 도착하여 유비와 싸웠지만 형세가 불리하였고 이떄 역병이 유행하여 관리와 병사가 많이 죽었다 그래서 조조는 군대를 되돌리고 유비는 형주와 강남의 여러군을 차지하게되었다 유비전에서는 손권은 주유 정보등 수군 수만을 보내 유비와 힘을 합쳐 조공과 적벽에서 싸워 크게 이겨 그 배를 불태웠다고 하고 제갈량전에서는 손권은 크게 기뻐하며 즉시 주유정보 노숙등 수군 삼만을 보내어 제갈량을 따라 유비를 뵙고 힘을 합하여 조조에 대항하였다 조조는 적벽에서 패해 군대를 이끌고 업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주유전에서는 주유와 정보를 보내어 유비와 힘을 합쳐 조조와 맞서 적벽에서 조우하였다 그떄 조조의 군대에는 이미 질병이 퍼져있어 처음 교전하자 조조의 군대가 패퇴하여 강북으로 후퇴하였다고 하고 오주전에서는 주유와 정보가 좌우독이 되어 각각1만명을 거느리고 유비와 함께 진격하였는데 적벽에서 조조군을 만나 그들을 크게 격파했다 조조가 남은 함선을 불태우고 병사를 이끌고 퇴각하였다고 이렇듯 정사에서는 유비와 손권이 연합하여 조조를 격퇴한 내용이 나와있고 주유와 정보의 활약이 공통으로 나와있는걸 볼수있다 적벽대전의 배경에는 조조는 205년 원담을 멸망시키고 206년 고간 207년은 오환 원상연합군을 무찌르고 원상을 멸망시킴으로써 원씨일가의 세력권이던 기주 청주 병주 유주를 손에 넣고 오환의 세력을 크게 약화시켜 하남 하북의 패권을 거의 확립하였다 조조의 입장에서는 매우 자신감이 넘치던 상황으로 볼수있다  승상에 오른 조조는 통일의 의지를 표명하였으며 다음 해에 여름 본격적으로 남진을 개시하였다 갓 병사한 유표의 뒤를 이어 형주목으로 옹립된 유종은 조조에게 그대로 항복하고 한수북부를 포기한 유비는 강릉으로 향하였으나 같이 따르던 피난민들의 속도가 느려 조조군의 기병에게 당양에서 따라잡혀 위기에 빠진 후 결국 한진에서 수로를 따라 하구에 주둔하는 유기에게로 피신했다 장판파 전투가 생각나는건 나만의 생각일까 유비는 항상 도망다니는 느낌이다 특히 초기에는 더욱 여기에 유기와 손권은 적대행위를 중지하고 손권은 주유 노숙 정보등의 의견을 받아들여 유비 유기 등과 연합하여 조조에게 맞서기로 결정을 내었다 손권의 선친인 손견을 죽음으로 몰아간 전력이 있는 유표의 가문에 대해 손권의 이러한 조치는 매우 파격적이었다 급해서 그랬을지 몰라도 어쨌든 매우 좋은선택이었던것은 분명한다 그럼 준비과정을 알아보면 유종의 항복과 유비의 피신 이후 거의 형주전역을 다 먹었던 조조는 강릉에 주둔하며 수군이 채비를 갖추길 기다렸다 조조는 이끌고 온 보병을 나누어 수병으로 재편성하였다 조조 원정군의 대다수가 물에서의 싸움에 익숙하지 않았으므로 항복받은 후 새로 편입한 형주수군과 함꼐 수전 훈련을 시키는 한편 적선보다 중량이 큰 함선을 대량으로 건조하도록 하였으며 배멀미를 막기 위하여 배들을 튼튼한 쇠고리로 종횡으로 연결하여 흔들림을 낮추고 그 위에 널빤지를 깔아 배에서 배로 움직일수 있도록해서 해결하였다 정말 불타기 딱 좋은 조건으로 이점은 나중에 화공을 받았을떄 선단 전체가 불타버리게 되는 원인이 되고만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조조군은 더욱이 익숙하지 못한 기후와 여름기후 강릉에서 주둔지로 겨겨지는 오림까지의 늪지대 등으로 인하여 역병이 도는 등 건강상의 문제가 있었는데다가 접전하 결과 손권의 수군이 강 위에서는 우세하다는것이 판명되었으므로 우위를 확보할떄까지는 장강 북안에 포진한채 소극적인 행동의 취하게 된다 유비는 유기에게 몸을 의탁한 이후 하구에서 좀더 하류에 위치한 번구에 자리잡았는데 전부터 유기가 매우 신뢰했으므로 매우 병약한 그에게 군무를 사실상 위임받았다 이후 유비군은 제갈량을 손권에게 보내어 손권과 동맹하고 주유와 같이 적벽대전에 참가하게된다 손권은 주유를 도독 정보를 부도독으로 임명하여 군의 지휘를 일임하고 자신은 시상에 주둔하였ㄱ다 주유는 함대를 이끌고 하구를 지나 조조의 수군을 마주보는 형태로 장강 남안에 포진하였다 조조의 수군은 소극적으로 일관하였고 주유도 조조의 대함대를 단번에 격파할 만한 기회를 노리고 있어 당분간 대규모 충돌은 일어나지않고 208년말으로 접어들게된다 여기까지가 적벽대전의 초기라 할수 있다 지금부터는 적벽대전의 전투경과를 보겠다 유비와 손권은 손을 잡아 전선을 불태웠지만 조조은 병 등 여러까닭떄문에 물러났다 즉 조조는 큰 피해없이 물러낳수 있었다는 것이다 조조는 이미 물러날수있는 길을 만들고 이에 조조가 안전하게 돌아갈수있었다 적벽대전은 삼국지 연의와 다르게 스케일이 큰 싸움이 아니었음을 알수 있다 글을 작성하면서 놀랐다 황개전을 보면 주유를 따라 적벽에서 조조를 막을떄 화공할 꾀를 짰다라고만 나온다 첫싸움에서 조조의 군대는 패하여 장강 북쪽에 머무르는데 주유등은 남쪽 강가에 있었다 주유의 부장 황개가 말하였다 지금 적군은 많고 우리는 적기 떄문에 오랜시간 싸우는것은 불리합니다 그라나 제가 보기에 조조군의 배는 앞뒤가 서로 이어져있으므로 불을 질러 달아나게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유는 배 수십척을 가지고 풀을 가득 싣고 그 가운데에 기름을 붓고 위에 아기를 세웠다 그리고 먼저 편지를 써서 조조에게 항복한다고 알린다 날랜 배를 미리 준비하여 각각 배의 뒤에 매고 순서대로 함께 나아갔다 황개는 여러 배를 풀어 동시에 불을 질렀다 당시 바람이 매우 사나웠으므로 강가의 진에까지 불길이 번졌다 조조는 조인 등을 남겨 강를을 지키도록하고 자신은 곧장 북쪽으로 달아났다 여기까지가 주유전에 나오는 적벽대전이다

 

삼국지연의에서의 적벽대전과 기타

적벽대전에서의 실제와 허구

 

더 자세한것은 조조전에서 조조의 정예병은 피해를 받지않고 피해를 받은 병사들은 형주의 병사들이었다 조조는 스스로 자신의 진영에 불을 지르고 물러났다라고 나와있다 잠깐 적벽대전의 병력이나 피해규모를 알아보면 조조군은 약 24에서 25만으로 대체적으로 위나라 근처지역에 주둔하고있던 병력까지 포함시킨것으로 추측하고있고 이에 대항하는 손권군은 3만 유비군은 2만 정도라고 한다 적벽대전의 결과로 조조군의 피해규모는 수군은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고 전해진다 이번글에서는 삼국지 정사에서의 적벽대전과 그 배경 준비과정과 전투경과까지 글을 작성하였다 그럼 다음글에서는 적벽대전 전후상황 정사가 아닌 삼국지 연의에서의 적벽대전과 실제와 허구논란 등에 대해 글을 작성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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