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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이야기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사회 종교 문자

by 이은주 2019.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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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글에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대한 이야기를 서술했는데 이번에는 이어서 메소포타미아의 사회 종교 문화 역법에 대하여 글을 작성할것이다 첫번째로 메소포타미아의 사회는 수메르 인의 문명이 토대가 되었고 아카드아무르 인들의 문명이 가미되었다 화폐는 쓰이지 않아서 물물교환이 이루어졌다 당시 수메르의 정치사회구조는 귀족 평민 노예로 구성된다 왕 왕족 고위관료 고위 성직자들로 구성된 귀족들은 정치 권력과 거대한 토지를 소유했고 높은 신분을 유지했다 예전부터 신분제는 존재하였음을 알수있다 한편 평민들은 토지의 소유나 처분이 가능했고 신분을 살수있었다 전쟁 포로나 외지인 범죄자 그리고 채무자들 대부분은 노예였다 특이한 점은 채무 떄문에 노예가 된 사람은 3년 후에 일반인으로 복귀가 가능했다는 점이나 이것은 우리 역사와 조금 다른것 같다 그러나 노예는 주인에게 절대 복종해야했다 두번쨰로 종교에 대해 찾아보면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의 종교는 현세적 다신교로서 사후 세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점성술도 현세의 행복을 기원하는 의미로서 발전하였다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의 불규칙적이고 잦은 범람은 참혹한 재앙을 가져왔고 개방적인 지형은 끊임없는 외적의 침입을 불렀다 이러한 자연환경은 메소포타미아 인들의 세계관에 영향을 끼쳤다 자연의 혜택보다는 재앙을 극복하는데 힘써야 했던 수메르 인들은 갊도 지극히 현세적인 삶을 꾸려 나갔고 사후세계에 대해서는 거의 희망을 갖지 않았다 사후세계란 무엇일까 궁금하다 문화적으로도 암울하고 비관주의적읜 특징이 강하였다 그들이 갖고 있는 신에 대한 생각과 현세적인 가치관은 길가메시 서사시 등에 잘 나타나 있다 근년에 와서 고대사에 관한 많은 새로운 지식이 더해짐에 따라 인류의 가장 오랜 문명을 쌓아올린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는 이미 비씨4000년에 놀랄 만한 고도의 기술이나 물질문명이 결실하고 있었을뿐만 아니라 문학 미술종교 면에 있어서도 그 소박한 표현에도 불구하고 인간성의 깊은 이해를 나타내는 걸작 또는 제신에 대한 신앙을 나타내는 여러가지 유품들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 시대에 존재하는게 신기할뿐이다 메소포타미아는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강에 의한 비옥한 퇴적평야로서 수메르 인은 역사의 시초에 이미 남부에 정주하여 각지에 소도시를 중심으로 한 지역사회를 형성하고있었다 수메르인의 왕은 주신의 하나인 멘릴의 아들이라 칭하여 신으로서 숭배받았으나 그들의 뒤를 계승한 셈인 의 왕은 스스로를 신이라 부르지 않았다 예컨대 바빌론 제 1왕조의 함무라비왕 비씨 2000년 접반은 신에아와 엔릴에 의해 왕으로 지명되었다는기록이있다 함부라비 법전이 생각나는데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주요한 3주의 제신을 한쌍으로 해서 숭앙하는 습관이있었다 수메르인 사이에서는 아누 엔릴 엔키 등이 숭앙 받았다 최고신 이누는 이미 형식적 존재가 되어 있었으며 수메르 판테온의 실권은 엔릴에 돌아와 땅뿐만 아니라 하늘까지 다스리는 신이 되었다 왕권의 신장과 함꼐 주신은 국가신의 성격을 강화했다 셈 판테온에서는 셈인의 주신 마르투크가 함무라비왕 시대에 엔릴의 기능을 계승하여 최고신이 되었으며 사마쉬 신 과 한쌍을 이루었다 기원전 2000년 말부터 융성하기 시작한 아시리아 제국에서는 주신 아슈르가 최고신이 되었다 수메르인은 이미 발달안 신전제사 계급을 갖고있었다 고대에서는 후에 분화한 예술 학문과 같은 문화활동뿐만 아니라 세제 금융등의 사회경제활동도 신전과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당시 고급관리가 되는 지름길은 신전 부속의 서기학교에서 점토판에 설형문자를 배우는일이었다 따라서 문학작품도 습득되었다 그 가운데서도 길가메쉬 서사시는 인류가 소유하는 가장 오랜 이야기느니 하나이다 몸의 3분의2가 신 3분의 1이 인간이라고 했던 영웅 우루크의 왕 길가메쉬가 영원의 생명을 구하여 일찍이 대홍수에서 살아난 제신의 하나가 된 지우도라 아시리아판의 우트니파슈팅을 찾아간다 왠지 영화에도 나올것 같은데 그에게 가르침을 받은 길가 메쉬는 일단 영원의 생명을 얻기는 하나 도중에 이를 잃고 헛되어ㅣ우루크로 돌아간다 또한 새해에는 천지창조의 성극이 제사들에 의해 상연되고 신전은 토지나 양의 무리를 소유 소작이나 목축자에게 빌려 주어 연공을 바치게 하거나 이자를 붙여 돈을 빌려 주거나 물가의 기준이 되는 은의 정제가공이 행해졌다 신전의 경내에는 자주 지구라트 산을 뜻하는 라고 불리는 벽돌을 쌓아올린 높이 수십미터나 되는 인공의 산이 구축되었다 그 가운데서도 이른바 바빌론의 탑으로 불리는 에산길라 신전의 지구라트가 유명한다 거듭된 타민족의 침입이나 주권의 교대에도 불구하고 메소포타미아의 종교는 어떤 종류의 형태로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두무지 후의 탐무즈 아도니스 신앙을 들수있다 훗날 탐무즈는 해마다 시들고 봄이 오면 다시금 싹이 돋는 식물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한다고 했다 원래 수메르에서는 두무지가 사후 이 지상에 되살아나는것이 아니라 저승의 주민이 되었음에 불과한듯 싶다 아무튼 그의 아내인 여신 이난나 후의 이쉬타그 아티스와 함꼐 농산물의 풍요나 가축의 다산을 기원하는 신앙 대상으로서 극히 광범하게 고대 오리엔트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뒤로 점술은 매우 융성해졌다 1년의 반 이상이나 맑은 날씨가 계속되는 이 지방에서는 별의 관찰이 용이하여 규칙적인 천체의 운행은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안정을 주었다 그럼 세번째로 문자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수메르인들이 처음으로 썼던 문자는 상형문자였는데 이 상형문자는 형체가 있는 물건의 모양을 본꺼서 만든 글자로 낱말의 뜻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를 테면 산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산의 모양을 그려야하고 새를 나타내려면 새의 모양을 그려야했다 학생때 배웠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나타내기가 어려운것들이 많았기때문에 뒷발 그들은 쐐기모양으로 나타낸 설형문자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들은 많은 전설과 영웅들의 이야기 등을 영원히 남기기 위해 뼈나 갈대 줄기를 펜으로 삼아서 점토판위에 설형문자를 적고 불에 구워 보존했다 뒷날에 페니키아인들이 설형문자를 간단하게 만들었으며 이 페니키아 문자에 모음이 보태져서 오늘날 쓰고 있는 알파벳의 근본이 되었다고 한다 뭔가 신기하다 마지막으로는 역법이 있는데 수메르 인은 달의 운행을 기준으로 하여 1년을 12달로 하는 태음력을 만들고 다시 하루를 24시간 한시간을 60분 1분을 60초로 하는 60진법을 만들었다 원율 360도로 나누는것도 그들에게서 비롯된것으로보인다 시대를 생각하면 정말 대단한것 같다 그럼 이만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마치고 내일부터는 다른 문명을 작성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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