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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이야기

박망파 전투에 대한 이야기

by 이은주 2021.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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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글에는 조조군의 엄청난 대군에 맞서 쫓기는 입장에서의 유비의 장판파 전투를 다뤘는데 물론 조운의 대군으로 뛰어들어 아두와 감부인을 구하거나 장비가 장판교에서 대군을 막아내는 모습은 대단하다 이번글은 장판파 전투 이전의 전투라고도 볼수 있는 박망파 전투에 대하여 글을 작성해볼것이다 박망파 전투는 후한 말기 형주 신야 부근 박망파에서 유비와 조조가 싸운 전투로 이 전투에서 유비의 참모인 제갈량이 처음으로 참전한다 게임에서 유비군이 제갈량의 책략을 이용하여 하후돈의 군을 신나게 화계를 이용하는 장면이 생각난다 이때의 미끼로는 보통 조운이 이용된다 그럼 지금부터는 삼국지연의의 묘사를 알아보겠다 우선 배경은 후한 말기 한나라 황실의 후손이던 유비는 201년 여남전투에서 조조에게 대패하여 근거지를 잃고 돌아다니다가 형주 자사 유표에게 의탁하여 신야에서 머물고 있었다 실제로 유표는 꽤나 대단한 인물이라고 한다 그러던중에 사마휘의 추천으로 제갈량을 찾아가 삼고초려로 제갈량을 받아들이는데 성공한다 세번이나 찾아간 유비도 대단하고 제갈량도 유비가 주군으로서 괜찮다고 생각했기에 들어간것같다 한편 조조는 북방이 모두 평정되자 삼공의 직책을 없애고 승상인 자신이 모두 겸하였고 그 아래로 부하 모개를 동조연 최염을 서조연 사마의를 문학연으로 삼아 자신의 친위세력들도 문관들을 갖추어 놓고 남쪽으로 진군할 준비를 하였다 여기서의 사마의는 보통 우리가 아는 사마의가 맞다 그리하여 조조는 부하 하후돈을 도독으로 삼고 우금 이전 하후란 한호를 부장으로 삼아 10만 대군을 주어 박망성으로가 신야를 엿보라고 명하였다 전투과정은 조조가 진군해오자 유비는 모든 권한은 제갈량에게 넘기고 제갈량은 관우에게 군사 1000여명을 주어 박망파 왼쪽의 예산에 매복하게 하고 장비에게도 군사 1000여명을 주어 안림 뒤쪽 산골에 매복하고 있다가 박망성으로 가게 했으며 관우의 양자 관평과 유비의 양자 유봉에게는 군사500여명을 주어 박망파 뒤 양쪽에 매복하게 하였다 여기서 개인적으로 관평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관평은 중국 후한 말의 무장으로 촉한의 맹장 관우의 장남으로 유명하다 삼국지에서는 관우의 친아들이자 장남으로 등장하며 219년 음력 12월 서촉에서 형주군 최후의 보루인 맥성으로의 구원병이 오지않아 결국 아버지인 관우와 함꼐 직접 익주로 가 형주 수복을 위한 구원병을 청하기 위하여 탈출을 시도하던 도중 임저에서 오나라 장수 반장의 부장 마충에게 퇴로를 끊기고 뒤이어 곧바로 포위되어 관우부자가 그자리에서 참수당하는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황은 촉기에서는 관우가 처음 출군하여 번성을 포위하였을때에 돼지가 그의 발을 꺠무는 꿈 돼지한테 물리거나 죽은 돼지 사체가 부패하는 광경을 목격하는 꿈은 돼지꿈 중에서 흉몽에 속한다고 한다 을 꾸고 나서 아들 관평과 의논한 끝에 내가 지금 노쇠하니 분명히 형주로 돌아갈수 없으리라 라고 술회하는 부분이 나온다 따라서 관우를 따라 오나라의 번성을 공격하였으나 역으로 손권의 칼에 찔려 사살되었을것으로 추측할수 있다 처는 일설에 조운의 딸로 전해지는 조씨이며 자식으로 건안 18년 213년 에 태어난 외아들 관월이 있다 촉 멸망 당시 위나라 백마장군 방덕의 아들 방회에 의하여 관우의 차남 관흥의 후손들이 모두 멸문지화 당하였지만 관월을 비롯한 관평의 후손들은 이시기에 오나라에 억류당한 상태였고 이 무렵부터 형주에 터전을 잡고 살기 시작했으므로 관우의 자손이 대가 끊기지 않고 오늘날 까지 이어질수있었다 개인적으로 더 글을 쓴 이유는 관평은 관우의 양자란 기록이 없다 하지만 삼국지 연의에서의 각색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우의 양자라고 알고있고 나도 그렇게 알고있어서 조금더 정사에 기록을 적어보았다 그럼 다시 돌아가면 그리고 제갈량은 남은 군사 500여명을 이끌고 미축 미방과 함꼐 신야성을 지키기로 하였는데 이 때문에 관우와 장비 등 많은 장수가 반발하였다 한편 하후돈과 우금은 박망파에 이르렀는데 하후돈은 군사를 둘로 나누어 5만명은 친위부대로 삼고 나머지 5만명은 군량과 말들을 호위하며 전진하게 하였다 박망파 바로 앞에 이르자 유비의 부장 조운이 하후돈을 습격하고 이에 하후돈은 부장 한호의 반대를 물리치고 조운을 추격한다 박망파에 이르자 유비가 직접 군사를 이끌고 하후돈을 요격하고 조운과 함께 후퇴한다 날이 저물자 하후돈은 쉴새없이 전진하였느나 뒤를 따르던 우금과 이전이 갈대 밭에서 유비군의 화공을 받고 이떄를 놓치지 않고 조운이 하후돈을 급습하여 하후돈은 그대로 불길을 헤집고 달아나게 되었다 한편 후군에 남아있던 이전은 박망성으로 급히 달려 갔으나 도중 관우와 맞닥뜨려서 간신히 혈로를 뚫고 달아났으며 우금도 군량과 마초에 불이 붙자 그대로 도주해버렸고 이에 하후란과 한호가 군량과 마초의 불을 잡으러 왔다가 장비와 맞닥뜨려 하후란이 죽자 한호도 그대로 달아나버렸다 결국어 다음날 하후돈은 달아난 장수와 군사들을 모아 수습하여 허창으로 돌아갔으나 군사를 엄청나게 잃고 마초와 군량까지 모두 타버려 남은것은 거의 없었다 이러한 박망파전투의 결과 및 영향으로 전투후 관우 장비를 비롯하여 조운 관평 유봉 등 전투에 나갔던 장수와 군사들이 신야성으로 합류하여 들어왔고 제갈량이 전리품을 나누었다 이때 조조는 직접 50만 대군을 이끌고 유비와 형주정벌에 나서게 되고 중간에 조조와 결탁한 유표의 아들 유종과 채씨 세력과의 대립 등으로 유비는 조조와의 장판파 전투에서 패배하게 된다 병력의 차이가 너무 큰것도 있다 참고로 박망파 전투에 나오는 인물들을 보면 유비쪽은 관우 장비 조운 미축 제갈량 손건 간옹이고 조조쪽은 하후돈 우금 이전 하후란이 있다 이번글은 특히 게임에서 재미있게 해보았던 박망파전투에 대하여 글을 써보게 되어서 좋았다 박망파전투의 배경 전투과정 결과 및 영향까지 다루어보게 되었는데 제갈량의 첫 참전이라는것에도 의미가 있고 그 과정에서 삼고초려 제갈량을 얻는 과정이나 뒤에 나오는 장판파 전투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 전투라고 생각하여서 글을 쓰게 되었다 적당하게 글이 마무리 되어서 만족한다 삼국지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이렇게 여러 중요한 전투나 인물들에 대해서 더 알아볼 예정이고 이번글은 여기서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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