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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이야기

서황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by 이은주 2021.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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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글까지 삼국지에서 일어나는 여러전투에 대해서 글을 작성해보았는데 이번글은 삼국지에 나오는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인물에 대하여 글을 작성할것이다 서황이라는 인물에 대하여 작성하는 이유는 만화 삼국지를 보는데 서황이라는 네임드급 장수가 화살을 맞고 허무하게 죽는 장면을 보아서이다 실제 기록에서도 그러한지 궁금하기도 하고 해서 글을 작성해보려고 하였다 서황이라는 인물은 227년까지 살았고 중국 후한말 삼국지 위나라의 장수로서 자는 공명이다 양봉 휘하에 있다가 조조에게 구순한 후 맹활약여 위의 오장군 중 한명으로 평가받았다 특히 번성전투에서 관우를 물리쳐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있던 조인을 구해내었다 용병은 불필요한 소모는 피하면서도 일단 호기를 잡으면 파고들었다고 한다 서황의 생애부터 알아보면 하동군의 관리로서 이각의 부하 양봉을 섬기며 공적을 세워 기도위에 임명 되었다 195년 흥평2년 이각과 곽사의 내전으로 수도 장안이 혼돈에 휩싸였고 서황은 양봉에게 헌제를 모시고 낙양으로 돌아가자고 진언하였다 이런저런일들을 겪은 끝에 헌제일행은 황하를 건너 안읍에 당도하였고 서황은 도정후에 봉해졌다 196년 건안 원년에 헌제는 마침내 낙양으로 돌아왔고 양봉은 하남윤 양현에 주둔하였다 서황은 양봉에게 조조와 손잡을것을 제안하였다 조조는 양봉을 지원하는척하면서 헌제를 빼돌렸다 양봉이 후회하며 조조와 격돌했으나 패배하고 원술에게로 달아났다 그리고 서황은 조조에게 귀순하였다 항장출신인것이다 이렇게 서황은 조조의 부하가 되었다 서황은 조조에게로 귀순한 뒤 하남윤 권현 원무현을 평정하고 비장군을 받았다 198년 여포 토벌에 참여하여 따로 조서 이추 등을 항복시켰다 199년 사환 조인과 함꼐 하내군의 수고를 쳐부수고 참하였다 200년 서주에서 거병하였던 유비를 백마에서 원소의 선봉장 안량을 연진에서 문추를 칠떄도 활약하고 편장군이 되었다 유벽 유비등이 여남군 은강현 등 허도 근방을 교란하기에 조홍과 같이 가 축비를 무찔렀다 순유가 한순의 운송대를 습격하자며 적임자로 서황을 추천하였다 사환과 함께가 그 물자들을 불사르고 도정후에 봉해졌다 204년 조조가 업을 포위해두고 한단현을 함락하였다 역양현형 한벙은 일단 항복했다가 다시 무기를 들었다 이를 서황이 맡았는데 편지를 단 화살을 날려 설득하였다 한범은 무기를 내렸고 서황은 조조에게 원담과 원상이 아직 망하지 않았고 많은 성들이 추세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지금 역양을 밀어버린다면 다른 성들은 죽음을 불사할것이고 항복을 허락한다면 우러러보지 않는 성이 없을것입니다 라고 견해를 밝혔다 조조도 이를 옳다고 판다하였다 이어서 복병을 활용한 기습으로 모성도 접수하였다 205년에는 남피에서 원담을 격멸하는데 공을 세우고 평원국의 잔당들도 소탕하였다 207년 백랑산에서 답돈을 정벌할때에도 따라사서 횡야장군에 임명되었다 208년 형주 정벌을 수행하여 중려 임저 의성 방면을 정리하였다 만총과 한진에서 관우를 물리치고 조인과 더불어 강릉을 방어했으나 주유에게 패배하였다 211년 대릉현을 근거지로 들고일어난 상요를 하후연의 지휘항 진압하고 참수하였다 조조군의 한중을 향한 기종에 위협을 느낀 한수와 마초 등 관중의 세력들이 동관으로 동진해왔다 서황은 분음현에 머무르며 하동군을 진무하였다음력7월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동관앞에서 대기하자 관중군도 황하 서쪽을 비우고 남쪽에 전력을 집중하였다 서황이 포판진을 건너 서쪽을 확보하겠다며 병사를 청하니 조조가 승낙하였고 밤중에 주령과 아울러 보병 기병 4000여명으로 황하를 넘어갔다 해자와 울짱을 미처 완성하지 못했는데 5000여명으로 강습해온 양흥을 격퇴하였다 하후연과 같이 저족을 평정하고 안정에서 조조와 합류하였다 섣달 조조는 업으로 귀환하고 서황은 하후연 등과 장안에 남았다 212년 부 하양의 잔장들을 처치하고 양흥을 베었다 215년에는 장로 정벌에 종군하여 별도로 저족들을 꺠트리고 평구장군으로 옮겼다 장순의 포위를 풀고 진복 등 30여 둔을 격파하였다 이번에도 하후연 밑에 남아서 한중을 수비하였다 서황은 하후연과 같이 많은 전투에서 공훈을 쌓은것 같다 유비가 진식 등 10여명을 보내어 마명각도를 확보라혀는것을 분쇄하였고 조조가 그 잔도는 한중의 험하고 중요한 목과 같다고하여 크게 칭찬하였다 건안24년 219년 벙성의 조인을 뒷받침하여 남양군에 주둔하였다 음력8월 억수로 불은 한수에 우금군은 수몰당하고 번성과 양양성은 관우에게 포위당했다 서황에게 조인을 구하하는 명령이 떨어졌지만 다수가 신병이라 육탄전을 치르기 어려워 일단 양릉피에 진을 쳐놓고 조인에게 원병이 왔다는 사실만을 알렸다 장수들은 얼른 나아가지 않는다고 비난과 불평을 쏟았다 조엄이 열흘내로 증원군이 올것이니 그 후에 안팎에서 치고 나가야 한다 만약에 늦어져 처형된다면 자신의 목숨을 대신 내놓겠다며 진정시켰다 10월에 과연 조조가 서상 여건들을 보내어 병마가 전부 집결하면 전진하라고 하였다 이내 은서 주개 등의 열두 영도 도착했고 동소의 조언을 채택한 조조의 지시에 따라 손권이 강릉과 공안으로 진격한다는것까지 조인과 관우에게 알렸다 그러는 사이에 거짓으로 해자를 파며 언성의 뒤를 끊는척하였다 언성의 관우군이 진지를 불태우고 철수하였다 양릉피와 언성을 연결하고 점차 전진하여 관우군의 포위망에 3장거리까지 다다랐다 관우군은 위두와 사총에 진영이 있었고 위두를 친다고 선전하고는 사총을 강타하였다 사총의 급작스런 사태에 관우가 몸소 보병과 기병 5000여명을 데리고 달려왔다 서황이 여지없이 박살내고 그대로 포위망 깊숙이까지 들어가 모두 무너트렸다 그 대단한 관우에게 승리를 따낸것이다 마피로 개선하자 조조가 7리 밖에서 맞이하고 성대한 연회를 베불어 노고를 치하하였다고한다 후반부 서황의 형주에서 활약하는데 220년 연강 원년 조비가 조조를 이에 위왕에 올라 서황을 우장군에 앉히고 녹향후로 진봉하였다 얼마 안가 황제에 즉위하고 양후로 올려 봉하였다 하후상 맹달과 함꼐 상용으로가 유봉을 축출하였다 유봉은 유비의 양아들이다 221년 황초2년 조인과 힘을 합쳐 진소를 물리치고 양양을 되찾았다 222년 조비가 남정을 개시하여 서황도 조진 하후상 장합과 더불어 남군을 포위했지만 함락시키지 못하고 돌아왔다 앞뒤를 정확히 알수없는 황초 연간에 양평을 진수하며 양평후로 이봉되었다 226년 조비가 죽고 조예가 황위를 계승해 어수선한 틈을 타 양양으로 북진해온 제갈근을 사마의 아래서 격퇴하고 227년 태화 원년에 병사해 시호는 장후라 하였다 이러한 기록을 보면 서황은 조조 조비 조예까지 장수로서 일을 하였다 제법 장수했다고도 볼수있는것 같다 여기까지가 정사에서의 서황의 기록이다 생각보다 글이 길어져서 여기까지 마무리하고 다음글에서 이어서 서황의 성품과 평가 삼국지 연의에서의 서황에 대하여 다루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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