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만화나 소설 게임 등의 여러매체를 통해 생각해보면 삼국지의 시작을 반동탁연합군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황건적의 난이라고 볼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반동탁연합군이 우리가 대부분 아는 인물들이 등장하기도 하고 흔히 말하는 본격적인 전투 등이 많이 나타나서 그런지 반동탁연합군에 더 초점이 가는것 같다 어쨌든 이번글은 그 이야기에 대해 작성할것이다 반동탁연합군 즉 동탁토벌전은 190년에서 191년에 동탁과 동탁에 대항하여 연합군을 결성한 관동의 지방세력간의 싸움이다 동탁이 소제를 폐위하고 헌제를 옹립하며 공포정치를 행하자 관동의 지방세력들은 원소를 중심으로 연합군을 결성하였다 아무래도 원소가 명문가 출신이고 이름도 많이 알려져있어서 그런것 같기도 하다 연합군 대부분은 동탁과 싸우기를 꺼려하여 조조 위자 포신 왕광 손견만이 동탁과 교전을 벌였고 동탁은 낙양에서 장안으로 천도하여 연합군의 예봉을 피하였다 손견이 여러차례 이긴데에 힘입어 연합군은 낙양을 뺴앗았으나 내홍이 일어나 분열 되어 동맹은 결렬되고 동탁이 주축이 된 후한 조정은 지방에 대한 통제를 잃었으며 지방세력의 할거 경쟁구도로 바뀌었다 정사에서는 손견은 낙양의 우물에서 전국옥새를 발견하였으나 이를 눈치챈 원술이 손견의 아내를 인질로 잡고 옥새를 내놓으라고 요구했기 떄문에 손견은 어쩔수없이 원술에게 옥새를 강탈당하였다 어째 원술에 대한 이미지가 더 안좋아지는것 같다 여기까지가 반동탁연합군의 간략적인 요약이고 더 자세히 알아보면 먼저 배경은 후한 말 한나라는 잇달은 환관과 외척의 전횡으로 인하여 크게 쇠락하였다 당시에는 환관이 정권을 잡아 매관매직이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관리들의 부패가 극에 달했는데 낙양의 태학을 중심으로 모인 사대부들은 청의당을 자칭하며 이같은 환관들의 행태를 비판하는 움직임을 보이다가 대거 숙청되었고 살아남은 사람들도 모두 금고형에 처해진다 이것이 유명한 당고의 금 사건인데 이로 인하여 한 제국은 완전히 민심을 잃어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는 등 점차 말기적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이 같은 양상은 마침내 황건적의 난과 같은 백성들의 불만은 결집한 전국적인 규모의 반란으로 발전되었는데 정권을 잡고있던 환관 일파와 그들에게 돈을 바치며 벼슬을 샀던 무능한 관리들로서는 이와같은 국가적 위기를 극복할 능력이 없었다 결국 능력 부족을 시인한 조정은 20년 이상 지속되어 왔던 당고를 해제하고 청의파 관료들을 기용하여 반란을 진압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힘을 얻은 청의파는 오히려 역공을 가해 환관세력을 절멸시키고 만다 대단한 사건이었고 이를 주도했던 인물은 청의파 중에서도 젊고 과격파의 필두로 여겨지던 원소였다 앞에서 말했지만 명문가 출신으로 많은 지지를 받았던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원소는 정권 장악에는실패했는데 이는 십상시의 난으로 인한 영제의 승하와 외척이었던 대장군 하진의 죽음 십상시의 몰살등이 이어진 극심한 혼란을 틈타 군대를 이끌고 수도에입성한 장군 동탁이 황제의 신병을 확보하고 금군을 장악했기 떄문이었다 정권을 잡은 동탁은 곧 황제였던 소제 유변을 폐위하여 홍농왕으로 강등시키고 당시 9살이었던 진류왕 유협을 옹립하였는데 이는 하태후라는 강력한 외척이 뒤에있는 소제와는 달리 어리고 후견인이 없는 유협을 옹립하고 그 후견인을 자처함으로써 정권을 마음대로 휘두르기 위한 사전 작업이었다 동탁은 황제도 폐위 즉위를 마음대로 할수 있는 엄청난 힘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를 두고 동탁과 대립한 끝에 원소는 실각하여 달아나게 되었고 기주 발해군에서 세력을 형성하였드 그 외에 노식 원술 조조 등의 많은 명사들이 동탁에게서 달아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동탁은 원소를 발해태수로 임명하여 회유함과 동시에 한복을 기주목으로 삼아 원소가 거병하지 못하도록 견제 하였다 동탁입장에서는 그 만큼 원소가 신경쓰였던 존재였던 것이다 이에 동군태수교모는 동탁의 죄악을 고하며 의병을 일으켜 동탁을 도모할것을 촉구하는 삼공부의 공문을 위조하여 각지에 전달했는데 한복은 여런이 원소에게 향하는것을 보고 마침내 원소의 거병을 승인하였다 여기까지가 반동탁연합군이 일어난 배경과 이야기였고 지금부터는 진행과정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다 190년 정월 원소는 후장군 원술 기주목 한복 예주자사 공주 연주자사 유대 하내태수 왕광 진류태수 주막 광릉태수 장초 동군태수 교모 산양태수 원유 제북상 포신 등과 더불어 연합하였고 무리는 각기 수만은 헤아렸다고 한다 조조 역시 본위장군을 칭하며 연합군에 가세하였다 이때 공손찬은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에 유비가 연합군에 참가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었으나 삼국지에 주석으로 인용된영웅기의 일부분에 의하면 이떄 유비는 영제 말에 낙양에 있었다가 조조와 함께 페국으로 가서 군대를 모았고 영제가 승하한 뒤 천하에 대란이 일자 동탁을 치기 위하여 거병하였다고 한다 즉 유비의 참가는 진실인것이다 191년 헌제 대신 유우를 황제로 옹립하여한 원소와 헌제를 인정하는 원술간에 의견 대립이 생겼다 참고로 둘은 형제이다 유우는 이미 황제가 존재하는데 그 자신에게 불충을 권유하지 말라며 원소의 황제 옹립을 거절하였다 손견은 병력을 수습하여 연인에 주둔하고 있었다 이에 호진은 화웅 여포등과 같이 손견을 공격하였으나 손견에게 대패하였고 손견은 도위 화웅 등의 목을 베었다 흔히 알고 있는 관우와 화웅의 일기토 결과관우의 승리는 거짓이다 동탁은 손견의 용맹과 굳셈을 두려워하여 이각을 손견에게 사신으로 보내어 화친을 청했지만 손견은 역적과 손을 잡을수 없다는 이유로 화친을 거절하고 낙양에 입성하였다 이렇게 기세 좋았던 반동탁연합군의 분열과정은 손견은 낙양의 전국옥새를 발견하였다가 이를 눈치챈 원술이 손견의 아내를 인질로 잡은 뒤 손견에게 옥새를 내놓으라고 협박하였고 손견은 아내의 안전을 지키기 위하여 원술에게 어쩔수없이 옥새를 내주었다 연합군은 원소진영과 원술 진영으로 갈라서서 서로 전쟁을 벌였는데 유표는 원소와 공손찬은 원술과 결합했다 손견은 원술의 명을 받고 유표를 쳐들어갔다가 전사했다 이번글은 여기까지 작성하고 다음글에는 삼국지 연의에서의 반동탁연합군과 여러전투에 대해서 알아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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