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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이야기

번성전투 두번째 이야기

by 이은주 2021.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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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글에서는 번성전투의 배경과 삼국지 연의에서 이야기하는 번성전투에 대한 내용에 대하여 글을 작성하였고 작성하는중에도 모르는 부분이 있어서 흥미로웠다 이번글은 저번글에이어서 번성전투에 대하여 더 다루어 볼 생각이다

 

 

 

소설 삼국지 연의에서의 번성전투를 보았다면 이번에는 정사에서의 번성전투에 대해 글을 작성해보겠다 한중을 놓고 유비와 펼친 대규모 싸움 끝에 패하고 물러나 그 위세가 떨어진 조조는 지속적인 반란까지 겪으며 안팎으로 상황이 말이 아니게 되었는데 조조는 자존심이 상했을것이다 이때의 관우의 북진 시기 자체는 절묘하였다 관우의 북진 계기의 이유가 되는것으로는 추측이 되는 기록은 조인이 218년 9월에 완에서 난을 일으킨 후음이 남양태수와 백성을 붙잡고 있자 관우를 치기 위해 번성에 주둔하고 있던 조인은 방덕과 함께 완을 포위하였고 다음해에 봄 정월에 완을 함락하여 후음을 참수하였다 그 해에 조조는 부인 변씨를 왕후로 세운 후 우장군인 우금에세 조인이 관우를 공격하는 것을 돕게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우금이 조인을 지원하러 갔던 시기는 장마였고 장마에 미리 대비하고 있던 관우에 의해 우금이 이끌던 군가들이 수몰되고 우금은 항복하여 그와 3만 가량의 군사들은 포로가 되고 방덕은 처형이된다 우금은 아무것도 못해보고 당한것이다 우금을 사로잡은 관우는 조인이 지키는 번성과 양양을 포위하였고 수공에 의하여 번성에서 곤경에 처한 조인은 번성을 버리고 달아나려다 만총의 필사적인 만류에 마음을 고쳐먹고 필사적으로 버티기 시작한다 위에서 오랫동안 활약하였던 우금의 항복과 그가 이끌던 군사들의 수몰은 조조 세력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줬고 많은 사람들에게도 충격일것이다 중원 일대의 일부 반란 세력들이 관우에 호응하여 관우가 그들에게 일시적으로 벼슬을 내릴정도로 중국 전체가 진동하였다 관우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었는지 알수있는 장면인것 같다

 

 

 

지속적으로 상황이 좋지않던 조조는 관우의 위세까지 겹치자 겁을 먹어 수도를 옮기는것을 의논하였다 번성과 번성에 있는 조인이 당하면 그 다음은 신야와 완을 잃고 바로 조조 세력의 근거지인 중원이 유비세력의 칼날에 바로 닿고 각지의 반란 세력들까지 감당하게 될수도 있었다 사마의와 장제가 만류하며 손권까지 끌어들여 관우를 토벌할것을 권하였다 개인적으로 삼국지를 보면 조조는 대부분 유리하였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몇번의 큰 위기도 있었던 것이 내가 생각했던것과 달랐다 조조는 관우의 북진을 대위기로 간주하여 총력전으로 관우를 토벌하기로 한다 서황 조엄 서상 여건 주개 여공 배잠 연선 등은 물론 합비 전선에서 손권을 견제하던 장료까지 호출하고 조조 자신은 하후돈과 함꼐 예비대가 되어 수만 가량의 군사를 동원하여 5만 정도의 군사를 이끌던 관우를 어떻게든 잡아내려고 하였다 관우 하나를 잡겠다고 너무 많이 끌고 온것 같다고 생각할수도 있는데 그만큼 당시 관우에 대한 위상이 얼마나 대단한가 보여주는 모습이다 관우는 증원군으로 온 서황을 처음에는 잘 대처하였으나 지속적으로 충원되는 서황의 군세에 결국 밀려나 번성의 포위를 풀고 퇴각하게 되었다 칠군수몰로 인한 여파가 일을 크게 만들어버리고 만것이다 그래도 관우는 일생 대부분을 전장에서 보내왔고 그가 이끌던 형주군도 청니전투와 익양대치 등을 거치면서 단련된 정예군이었다 또한 수만 물량을 한꺼번에 상대하는 상황에 아직 대면하지 않았기에 무사히 퇴각만 한다면 추후를 도모할수 있었다 하지만 이전부터 호시탐탐 형주를 노리던 손권은 관우가 조조군과의 싸움에 집중하는 빈틈을 노려서 몰래 형주를 공격하였다 원래 형주는 적벽대전 승리의 주역이었던 손권의 몫이었으나 유비가 가로채어 내놓지 않았다 손권의 입장에서는 황당할것이었다 유비와 손권은 익양대치때 유비가 자력으로 얻은 땅을 뗴어주는것으로 양쪽이 합의를 봤었으나 그 후에도 유비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원래 관우와 손권은 사적으로도 사이가 안 좋았다 하지만 공적으로는 초와 오는 공동의 적인 조조와 싸우는 동맹이었고 손권 자신도 서신을 보내어 관우의 북진때 지원을 하겠다는 약속까지 했음에도 유비로부터의 반응이없자 드디어 손권은 실력으로라도 형주를 되찾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유비가 마냥 신의에 따른 행동을 한것은 아니었던것 같다 손권은 결심후 일단 여몽을 육손으로 교체하는등의 위장술을 써서 관우의 방심을 유도하였다 관우는 포로 3만을 먹일 식량이 부족해지자 명목상 동맹인 오의 상관에 있는 손권군의 쌀창고를 털어 식량을 충당하였는데 그 일이 있은 직후 손권이 형주를 뺴앗은것을 보면 상관의 식량 탈취라는 배신행위는 형주 기습에 대한 손권의 결심을 굳혔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있다 손권은 장수들과 몇 만 병력을 동원하여 형주 기습을 실행에 옮겼고 형주를 탈취하는 과정에서 촉의 객국공신 중 한명인 미축의 동생이기도 한 미방과 사인인 함꼐 항복하였다 평소 미방은 관우가 미방의 근무태만에 대하여 부당하게 꾸짖은 것을 기억하고있었다 미방의 배반에 충격을 받은 미축은 이직후 스스로를 묶어서 유비 앞에 나타나 자신이 죄가 있다며 벌을 달라고 하였느나 유비는 그에게 죄가 없음을 알고 처벌하지 않았다 미축은 이 충격의 영향으로 다음해에 세상을 떠났다 책이나 매체 등에서 소리없이 없어져서 궁금했었는데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쩄든 또한 관우는 번성을 포위할떄부터 상용에서 관우를 도와야하는 유봉과 맹달에세 지원을 요청하였었는데 평소에 관우는 그들을 홀대하였으므로 그들은 관우를 도와주는것에 별 열의가 없었다 관우가 평소에 부하들에게 잘해주었다면 다른 결과가 있지않을까싶다 관우는 이러한 상황에서 더욱 곤격에 처하게 되어 결국 아들인 관평과 함꼐 붙잡혀 생을 마감하였다 예전에 글을 쓴것 같은데 관평은 삼국지연의 소설에서는 관우의 양자로 나와있고 많이들 그렇게 알고있는데 실제로는 관우의 아들 중 장남이다 관우는 결국 관우의 평소 오만과 인화력 부제가 그 자신의 몰락을 가져온 셈이다 여기까지가 정사에서의 번성전투에 대한 이야기이다 확실히 대부분 알고있던 것은 삼국지 연의라는 소설이기 때문에 실제 기록을 보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어서 좋다 번성전투의 영향으로는 관우의 사망이 원인이 되어 유비는 동오정벌을 일으켰으나 222년 이릉대전에서 대패하였고 유비가 아끼는 장군 황충 등의 많은 장수와 군사들이 전사하는데 이때 촉을 이끌어가야할 많은 인재들이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유비 사후 제갈량은 인재난에 허덕이게 된다 224년 유비는 몸져눕고 숨을 거두게된다 여기까지 번성전투에 대해 작성하였고 다음글은 한중공방전에 대하여 글을 작성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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