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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이야기

번성전투에 대한 이야기

by 이은주 2021.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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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글에는 서황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아보며 글을 작성하였는데 글을 작성하다보니 번성전투라는 전투에 흥미가 생겨서 이번글은 번성전투에 대한 이야기를 작성하려고 한다

 

 

 

번성전투는 기원후 219년 한중왕 유비의 측근 관우가 조조가 점유중이던 형주 북부를 침공한 사건이다 처음에는 관우군이 조조군을 압도하였으나 조조군은 무너지지 않았고 그 사이에 유비군과 동맹 관계이던 손권군이 관우를 배신하여 관우는 번성에서 철수한다 이후 전투는 형주 공방전으로 이어지며 공방전의 결과 관우는 사망하고 유비는 형주를 상실한다 간략히 적어보았는데 작성한 내용처럼 관우의 사망과 연관이 되어있기 때문에 삼국지에서 상당히 큰 영향을 끼친 전투이다 위촉오 모두 노리던 형주에 관한것도 있기 떄문이다 그럼 번성전투의 배경과 삼국지 연의에서의 번성전투 삼국지정사에서의 번성전투에 대하여 알아보겠다 먼저 배경으로는 유비는 212년 부터 213년에 서촉 공방전에서 익주 자사 유장을 무찌르고 익주와 형주 두 지역을 차지한다

 

이에 조조가 215년 한중 공방전을 벌여 한중의 장로를 토벌하고 한중을 손에 넣지만 219년 유비와의 한중 전투에서 크게 패하여 한중을 잃고 유비는 한중왕에 오른다 유비는 보통 조조에게 많이 패배하였는데 이 한중전투에서 승리하면서 한중왕에 오른것이다 뭐 여러매체에서 유비는 한중왕이 되는걸 한사코 거부하지만 부하들이 설득하여 즉위했다고 한다 이에 조조는 손권과 동맹을 맺고 관우가 지키는 형주를 친다 그럼 먼저 삼국지 연의 에서의 번성전투에 대해 알아보면 관우는 즉시 군사를 일으킬 채비를 하여 부하 부사인과 미방을 선봉으로 삼는다 그러나 부사인과 미방이 실수로 술을 마시다 불을 내어 군량과 마초가 모두 타버리고 만다 아주 좋지않은 실수였다 이에 관우는 부사인과 미방을 불러내어 처벌을 하고 부하 요화를 선봉장으로세운뒤 아들 관평을 부장으로 삼고 출정길에 올랐다 이때 호반이 비시와 함꼐 한중왕 유비를 뵙기 위해여 서천으로 떠나게 된다 관우가 양양성으로 나가자 조조의 동생 조인은 만총에게 번성을 지키게 한 다음 부장 적원 요장 하후존과 함꼐 나가지만 관우의 계략에 빠져 하후존이 관우에게 죽고 관평이 승세를 몰아 조조군을 추격하면서 조조군의 태반이 양쯔강에 빠져 죽고 말았다 경험이 풍부한 관우의 상대가 되지못한것이다 결국 조인은 번성으로 후퇴하여 꼼짝하지 않고 성을 지켰고 관우는 수군사마 왕보를 시켜 강기슭에 연이어 20리에서 30리 8에서 12키로미터 마다 봉화대를 세워 동오의 공격에 대비하게 하였다 왕보는 관우에게 미방과 부사인을 주의하게 하라고 간언하지만 관우는 치중 반준을 보내어 지키게 하고는 더 이상 그것에 대해서는 대비를 하지 않았다 한편 번성으로 물러난 조인은 부장 여상에게 군사 2000여명을 주어 관우와 싸우게 하나 이내 패하고 조인은 허창으로 조조에게 구원을 요청한다 이에 조조는 부하 우금을 정남장군 방덕을 정서도선봉으로 삼고 동형과 동초 성하를 대동하여 관우를 무찌르게 한다 관우와 맞서며 열흘 넘게 대치하였고 이에 우금은 독장 성하의 반대를 물리치고 칠군을 번성에서 북쪽10리 4키로 미터에 떨어진 산기슭에 영채를 세웠으나 관우가 큰 물을 내어 우금의 진지를 쓸어버린다 우금은 남은 군졸들과 함꼐 붙잡히고 방덕은 동형 동초 성하 등의 장수와 보병 500명만 데리고 겨우 둑 위로 피신하였다

 

 

 

왜인지 마속이 생각났다 이에 동형과 동초가 방덕에세 항복을 건의하나 이에 분노한 방덕에게 죽임을 당하고 방덕은 끝까지 관우에 맞서 싸우나 성하는 관우의 활에 맞아 전사하고 남은 군사들도 모두 항복하였으며 방덕도 결국 관우의 부하 주창에게 사로 잡힌다 우금은 목숨을 구걸하다가 형주의 감옥에 갇히고 방덕은 끝까지 항복을 거부하다가 처형당한다 우금이라는 위의 명장이 항복을 하다니 처음에는 충격적이었다 이에 조인은 번성에서 백성들까지 대동하여 저항하고 관우는 번성을 공격하던 도중에 팔에 활을 맞고 부상을 당하나 명의 화타의 치료로 목숨을 구하게 된다 관우가 우금을 사로잡고 방덕을 처형하자 조조는 도읍인 허창으로 옮기려하지만 사마의와 장제가 건의하여 서황을 대장으로 여건을 부장으로 삼아 조인을 구원하게 하여 서황은 양릉파에 주둔한다 이것은 좋은 선택이 되었다 그리고 손권에게 사자를 보내어 관우의 배후를 치라고 한다 손권도 조조의 서신을 받고 형주 정벌에 나서 여몽을 대도독으로 삼고 손교는 군량과 양초를 담당하게 하였고 군사 3만여명과 쾌선 80여척을 거느리게 하였다 이어 한당 장흠 주연 반장 주태 서성 정봉 등 7장수로 하여 잇따라 출병하게 하고 나머지는 모두 오후를 따라 뒤에서 후원하게 하였다 먼저 여몽의 부하 육손이 계책을 내서서 첫 봉화대의 군사들을 사로잡고 이어 다른 봉화대의 군사들까지 항복하게 만들어 봉화대를 점령한다 그리고 여몽은 사로잡은 형주군으로 하여금 형주성의 성문을 열게 하고 형주성은 여몽의 손에 넘어간다 여몽은 성 일대의 민심을 정비하고 반준을 치중으로 삼아 형주를 다스리게 하였다 그리고 옥에 갇혀있던 우금은 조조에게 돌려보내고 우번을 보내어 공안의 부사인을 항복시킨다 그리고 부사인은 남군으로 미방도 항복시키고 번성을 포위하던 관우는 서황과 대치하게 된다 서황은 부장 서성과 여건을 먼저 내보내어 싸우고 기습공격을 하여 관우를 패퇴시킨다 이에 관우는 양양성으로 후퇴하지만 이미 형주성이 여몽에게 넘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관량도독 조루의 건의로 마량과 이적을 성도로 보내어 구원을 요청하게 한다 조인은 번성의 포위가 풀리자 조조와 합류하고 여몽은 장흠을 앞세워 관우를 공격한다 그리고 서성과 정봉으로 하여금 협공하게 하여 관우는 남은 군사들을 이끌고 맥성으로 후퇴한다 이에 관우의 부하 요화가 상용으로 가서 유봉과 맹달에게 구원을 요청하지만 거절당하자 성도로 가기 시작한다 여기서 관우의 생사가 결정되었다고 할수있다 관우는 맥성을 주창과 왕보에게 맡기고 아들 관평 조루와 함꼐 200여명의 군사들을 이끌고 서북쪽으로 달아나려 하지만 20리 8키로미터 떨어진곳에서 곳곳에 매복된 동오군의 공격을 받는다 맨 먼저 주연이 관우를 추격하고 다시 반장이 군사를 이끌고 관우를 급습하여 난전 중 조루가 죽고 말았다 관우는 남은 군사 10명을 이끌고 가던중 결석에서 반장의 부장 마충에게 사로잡히고 관평도 반장과 주연에게 포위당해서 사로잡히고 만다 관우와 관평은 손권의 장막으로 끄려가 항복을 강요받으나 이를 끝내 거절하고 손권은 주부 좌함의 건의로 결국 관우와 관평부자를 처형한다 여기까지가 그 대단한 관우의 죽음인것이다 관우가 죽자 그가 타던 적토마는 마충에게 내려지지만 적토마는 며칠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다가 그대로 굶어죽었고 정말 이럴수있는지는 궁금하다 관우가 쓰던 청룡원월도는 반장에게 내려졌으나 이후 이릉 대전에서 관우의 아들 관흥에게 반장이 살해당하면서 다시 촉으로 돌아가게된다 생각보다 글이 길어져 다음글은 번성전투의 영향과 정사에서의 번성전투에 대한 글을 이어서 더 작성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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