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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이야기

삼국지의 역사

by 이은주 2021.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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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몇개의 글은 삼국지에 대한 글을 작성할 예정이다

평소에 삼국지를 좋아라하기도 하고 게임도 많이 했었기 때문에 관심이 생겼고 어차피 글을 써야할일이 생겼기 때문에 시작하게 되었다

오늘 작성할 글은 조조와 원소의 대결이었던 관도대전에 대해서 알아보면 관도대전은 적벽대전 이릉대전과 함께 삼국지의 큰 영향을 주었던 중요한 전투로 중국 후한 말 현재의 허난성 정저우시에서 조조와 원소가 벌인 전투이다

백마전투를 전초로 시작하여 원소 곁에있던 유비는 여남에서 교란작전을 일으키는 등 중원을 둘러싸고 벌어진 

넓은의미로는 원소와 조조의 일련의 향쟁을 합친 큰 전투이다

당시 후한 황제는 명목상의 존재에 불과하고 전 각지에서는 준웅이 할거하는 전란시대였기때문에 그 군웅중에서도 가장강한자들은 조조와 원소였는데 조조는 환관가문 출신으로 부친인 조숭이 삼공중 하나인 태위까지 올랐던 사람이고 조조 본인도 두각을 나타내어 헌제를 손안에 넣어 정당성을 확보하였고 여포 원숳등을 차례로 이겨서 하남 장강이북에 걸친 지역을 지배하였다 

원소는 사세삼공이라 불리는 명문가였지만 출생은 노비에서 태어난 사생아였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두각을 나타네 청류파의 정치가로 명성을 떨쳤으며 이를 바탕으로 군벌화를 시작하여서 한복 공손찬 공융 등의 군벌들을 격파 병합하여 하북 산거 산동을 지배하여 당시 중국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서 최고의 위세를 떨치게된다 

유비가 서주에서 조조에게 반란을 하고 원소와 손을 잡게되었다 이에 조조는 직접 출진하여 유비를 격파하고 패배한 유비는 원소에게 의탁했으며 관우는 조조의 포로가 되어 조조의 밑으로 들어가 객장으로 지내게 되었다 이때 원소의 참모 전풍은 조조가 유비에게 신경이 쏠린 틈을 타 배후를 추격하자고 주장하였으나 원소는 아들의 병을 이유로 거절했다고하는 말들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아들의 병떄문에 그렇게 큰 일을 무시한다는 것은 원소의 행보와 전혀 맞지 않는 일이기 떄문에 원소의 진의가 무엇인지는 알수가 없다 다른 자료에 따르면 원소가 움직이지 않은 이유는 의심이 많았기 떄문이라는 기록이있다 원소는 조조가 유비를 공격하는 틈을 타 연주를 공격했고 당시 우금은 조조를 대신하여 주요 거점이던 연진을 지키고 있었는데 이사이어 원소군이 연진을 공격하자 열심히 수비하여 이를 막아냈으며 악진 등과 함꼐 황하에서 이동하며 오히려 반격을 해서 원소군의 수비초소 30여개를 불태우며 하무 왕마 등을 항복시켰다 하지만 다른 기록에서는 원소가 한결같이 움지이지 않았다고 주장하는데 적극적인 응전은 보이지 않았다는것을 봤을때 당시의 원소는 견제수준에 그친것 같다 그럼 지금부터는 백마전투 관도대전 전후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다 

원소는 격문으로 조조의 부정을 알렸으며 10만 대군을 편성하여 조조와의 결전을 감행한다 이때 원소측의 전풍은 조조는 유비를 격파하여 허 조조의 본거지 는 비워있지 않습니다 지구전으로 끌고가는것이 좋습니다 라고 말하고 본거지를 지키면서 조조의 후방을 교란한다면 3년안에 승리할수 있다고 말하였지만 원소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전풍은 자신의 주장을 강력하게 알리며 원소를 막으려 하다가 화가난 원소에게 투옥되었다

다음해 2월에 원소는 순우경 곽도 안량 등을 파견하여 현재 황하 남쪽에 포진한 조조군의 유연을 공격하게 하였다 이떄 원소군의 참모 저서는 안량을 기용하는것은 좋지 않다고 간언하였으나 원소는 이를 듣지 않았다

조조 쪽은 순유의 의견에 따라 연지에 주둔하며 미끼로서 원소군을 분리시키는데 성공한후 관우와 장료를 선봉으로 하여 안량을 격파하였스며 관우는 적 진영에 파고 들어가 단번에 안량을 베고 수급을 었었다 이에 순우경과 곽도는 백마의 포위를 풀었고 이에 조조는 백마의 군대와 백성을 모아 철수한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원소는 백마 연진에 이르는 주요 거점을 확보하게 되었고 조조는 더욱 남쪽으로 철수하게 된다 원소는 문추를 보내어 추격하게 하였으나 조조는 순유의 진언애 따라 수송대를 미끼로 사용하여 문추군의 대열을 어지럽게 한 후에 서황등이 습격하여 문추를 죽이는데 성공하였다 이시점에서 조조는 관도로 물러났고 원소 진영에서는 저수가 원소진영은 숫자가 많으나 용맹함은 조조진영에 미치지 못합니다 하지만 군량에 대해선 조조는 적고 원소는 풍족합니다 조조는 속전 속결을 바라니 저희는 지구전이 유리합니다라고 말하며 또 다시 지구전으로 가는 것을 간언하였으나 원소는 이를 듣지 않았다 원소는 직접 군을 움직여 진군하였는데 여기서 순우경 곽도 등과 합류한것으로 보인다 이떄 저수는 본대를 움직여 조조를 치지말고 연진에서 별군을 보내 관도를 칠것을 알렸지만 이번에도 역시 원소는 이를 따르지 않았다

원소는 조조군을 고역하여 수십리에 걸쳐 진을 구축하고 서서히 압박하는 전술로 조조의 진영을 압박하였다 조조 역시 수십리에 걸쳐 진영을 구축하여 이에 대응하였다 마침내 양군이 회전을 벌였는데 여기서 원소군이 승리하여 조조군은 요새로 들어가 굳게 지킨다 원소는 더욱 진군하여 관도까지 조조를 몰아붙였고 토산을 쌓거나 지하도를 파서 성벽을 무요화하려 하였으나 조조역시 내부에 똑같은것을 만들어 대응하였다 원소는 망루를 만들어 토산에 조조진영 안으로 화살을 쏘았는데 이것에 조조군은 크게 고전하였으나 우금이 토산의 지휘를 맡아 분전하여 조조군은 전의를 붙태우게된다

조조또한 발석차를 만들어 대응하였다 전황은 어느덧 지구전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조조는 크게 고전하고있었고 조조진영의 식량역시 계속 줄어들어갔다 조조는 걱정이 되어 본거지를 지키고있던 순욱에게 편지를 보내 철수애 대한 이야기를 하였으나 순욱은 철수에 대한 상담대신 예상 밖의 일을 예측하여 기회를 노리면 반드시 승리할수 있다고 조조를 격려하였다 예주 전 지엿이 원소군으로 돌아서는 등 조조의 전황은 점차 악화되었다 이무렵 원소진영의 허유는 비리가 탄로나 가족들이 투옥당한일이이었다 허유는 좁아진 입지를 만회하기 위하여 원소에게 군사를 나눠 허도를 습격하자는 헌책을 하였으나 원소는 관도에서 포위해 사로잡는것으로 여겼으므로 이를 거절하였다 자신의 계책이 거절당한데에 분노한 허유는 더이상 원소 아래에서 출세하기 어럽다고 판단하여 조조진영에 투항해왔다 허유는 순우경이 원소군의 병랼을 운송하는것과 오소에 주둔하고 있다는것을 알려주고 기습할것을 진언하였다 조조의 측근들은 이 발언을 의심하였으나 순유과 가후는 이 의견을 지지하였고 이에 조조는 즉시 행동을 개시하여 직접 원소군으로 위장한 5천의 특공대를 이끌고 기습오소의 군량과 군수물자들을 소각한뒤 순우경의 경비군을 섬멸하고 순우경을 참수하였다 한편 원소는 순우경이 습격당한것을 알게되었지만 오소가 쉽게 함락 당할리 없다고 여겼으므로 조조의 주력이 빠져나가 본진을 더욱 몰아붙여야 한다고 판단 장합과 고람에게 주력을 내어 조조의 본진을 공격하게 하였으며 순우경에게 경비경을 지원하였다 하지만 오소의 군대는 간발의 차이로 도착 이전에 전멸당했고 이 소식을 들은 원소진영은 책임소재를두고 내분이 벌어졌다 

이에 장합이 배신하여 원소진영을 불태우고 조조에 투항하였다 이에 원소는 갑옷을 입지도 못하고 도망쳤는데 예상치 못한 습격에 총사령관의 부재로 나머지 군사들은 혼란에 빠지게 되어 무너졌다 원소의 패배를 가져온 직접적인 원인은 허유의 배신이었지만 일을 더욱 심각하게 만든것은 수장인 원소와 근위세력인 곽도등의 지나친 독선과 오만함으로 간부들의 배신이 속출한것이다 이 글은 여기까지 작성하고 다음글은 관도대전 후와 의문점 등을 조금더 알아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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