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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이야기

삼국지연의에서의 적벽대전과 기타

by 이은주 2021.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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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글에서는 삼국지의 3대전투인 적벽대전에 대한 이야기중 정사 삼국지에서의 적벽대전과 그 배경 준비과정 전투경과에 대하여 알아보았고 이번글은 적벽대전에서의 전후상황과 소설인 삼국지연의에서의 적벽대전과 실제와 허구 등에 대하여 알아볼것이다 아마 적벽대전에 마지막글이 될것같다 먼저 적벽대전의 전후상황을 보면 적벽대전의 대패로 원정을 계속하는것이 곤란하게 된 조조는 형주를 떠나 조인 서황에게 남군을 맡기고 자신은 허창으로 귀환하는것을 선택하였다 유비와 주유 정보 연합군은 남군까지 진격하여 조조군과 싸웠다 건안 14년 209년에 조인이 성을 버리고 달아났으므로 마침내 주유는 남군을 손에 넣었고 손권은 주유를 남군태수로 임명하였다 한편 유비는 남쪽으로 진격하여 무릉 장사 계양 영릉 4군 태수의 항복을 받았내었다 조조는 쉽게 항복 받은 옛 유표령 형주의 남반부를 잃고 강하군 북부와 양양 이북만을 유지하였다 다른 나머지 땅은 손권과 유비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다 손권은 주유에게 형주 공격을 맡기고 자신은 대군으로 합비를 공격하였다 조조은 장희에게 기병 1천을 붙여서 합비로 보내었는데 장제가 4만 대군을 파견했다는 거짓문서를 만들어서 합비성으로 보냈다 이 소식이 합비성과 손권 군 양측에 모두 전해지자 손권은 이를 믿고 진영을 불태우고 달아났으므로 합비성은 무사했다 합비전투과정에서는 내가 알던 것과 조금 다른듯 하다 장료가 열심히 잘 틀어막았다고 알고있었다 어쨌든 소설인 삼국지연의에서 적벽대전을 알아보면 연의에서 보면 형주자사 유표 사후 그의 부하 채모가 유종을 유표의 후계자로 선택한 뒤 형주 전지역을 조조에게 주고 항복한다 그러나 그떄쯤에 조조는 신야에 머물러있는 유비를 공격하여 신야성 번성 양양성을 되찾고 유비를 저멀리 장판까지 쫓아낸다 하지만 장판파 전투에서 장비가 조조군을 막고있을 무렵 유비는 백성을 데리고 도망가고 있었는데 조조가 물러가자 제갈량은 동오로 가서 손권을 설득시킨다 손권이 결심하고 주유를 대도독으로 삼고 정보를 부도독에 삼고 노숙을 군사에 삼아서 조조와 전쟁을 일으킬것을 결심한다 제갈량이 불지른듯하다 젹벽대전에서의 서전은 유비와 손권의 동맹군의 10만 군사와 조조군의 100만 대군이 맞붙었는데 물량적으로는 훨씬 조조군이 유리하였으나 유비와 손권 동맹군의 지략으로 조조군을 물리쳤다 조조군이 군사를 이끌고 나와서 적벽반대편에 대수채를 세우고 대치한 후에 조조는 주유와 친했던 장간을 오에 보내어서 주유를 설득시키려하나 주유는 그것을 간파하고 일부러 전쟁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고 태사자에게 전쟁이야기를 꺼내는자를 죽이라고 명령하자 장간은 항복이란 말도 꺼내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장간은 주유가 자고있을때 채모와 장윤이 주유와 내통하고있다는 가짜 편지를 발견하고 그 편지를 가지고 도망간다 그걸본 조조가 노하여 채모와 장윤을 베고 우금과 모개를 새 수군 도독으로 임명한뒤 장간을 다시 보내지만 주유는 편지를 가져갔다는 명목으로 산속 처가에 가둔다 하지만 장간은 그곳에서 탈출하여 방통을 만나는데 이를 본 장산은 방통을 데리고 조조를 찾아가게된다 여기서 유명한 내용이 시작된다 방통은 조조군사들이 배멀미를 한다는것을 알아차리소 조조군의 배를 서로 연결하도록하고 이에 서서가 이를 간파하고 방통에게 자신이 살 길을 묻자 서서에게 마초가 반란을 일으킬것이라는 거짓의 명목으로 허창으로 돌아가라고 하여 서서는 조조에게 장패와 3000명의 군사를 얻고 목숨을 건지게 된다 서서입장에서는 도움을 받은것이다 조조는 선상위에서 문무백관들을 한대모아서 잔치를 벌였으나 도중 양주자사 유복을 죽여버리는 실수를 범하게 되어 아들 유희를 시켜 시체를 가져가라고 한뒤 장사지내게 핮ㄴ다 이에 조조의 부하 초촉과 장남 문빙이 순시선 50여척과 정예군 1000여명을 이끌고 오군을 습격하지만 초촉은 한당에게 장남은 주태에게 죽고 대패하게 된다 한편 조조는 장간의 내통편지가 주유의 계략인것을 알아차리고 채모의 동생인 채중과 채화를 주유에게 잠입시킨다 하지만 주유는 그것을 알아차리고 황개의 고육계를 활용하여 황개만을 처벌하였다 이떄 감녕도 황개가 맞으려고 할떄 너무 늙었다고 항의하자 감녕도 처벌되었다 물론 이런 소동은 조조를 속이기 위해 황개가 주유와 짜고 황개 자신의 고통을 무릅쓰기까지하며 벌인 연극이었다 채중과 채화는 이 내용들을 낱낱이 조조게에 보고하고 황개와 감택 감녕이 청룡기를 달고 군량을 실은 배를 타고 항복한다고 하였다 채중과 채화로부터 황개와 감녕의 처벌소식을 들은 조조는 둘의 투항을 기정사실화하였지만 제갈량이 동남풍을 불게한다 그리고 주유는 감녕을 제1대로 임명하여 채중과 함꼐 항복한 군사들을 데리고 오림을 탈취하라고 하였으며 태사자는 제2군대로 임명하여 군사3000여명을 주어 황주 경계에가서 합비에서 오는 조조군의 지원군을 막게 하였으며 여몽은 제3대로 봉하여 군사 3000여명을 주어 오림에서 감녕을 돕고 능통은 제4대로 임명하여 마찬가지로 3000여명의 군사를 이끌고 이릉 경계로 가 감녕과 여몽을 지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동습을 제5대로 임명하여 군사 3000여명을 주어 한양을 취하고 한천을 따라서 조조군의 영채를 치도록 하였다 또한 각 부대를 지휘하는 장수도 임명하여 제1대는 한당 제2대는 주태 제 3대는 장흠 제4대는 진무였고 모든 부대에게 각각 전선 300여척을 주어서 모두 1200척의 전선이 있었고 대 앞에 20척의 화선이 앞장섰다 제갈량 역시 조운에게 군마 3000여명을 주어 오림에 매복하게 하고 장비에게도 3000여명을 주어 이릉으로 가는길을 끊고 호로곡 어귀에 매복하게 하였으며 유기에게는 무창에 매복하게 하였으며 마지막으로 관우는 그 유명한 화용도에 매복하게 하였다 먼저 주유는 항복하는척 오에 잠복한 채화를 처형하고 황개가 항복하는 척 접근해서 군량을 실은 배에 불을 붙이고 진군한다 이를 본 문빙 조조의 부하가 이를 막으려하지만 활을 맞고 물에 빠지고 황개의 전선들은 조조군 수채에 불이 붙자 연환계에 의하여 배가 다 타버리고 조조군은 몰살당하고 만다 방통의 전략이 통한것이다 이에 장료가 군사 10명을 데리고 조조를 구출하고 도중에 황개를 활로 쏘아 맞힌다 그러나 황개는 원래 수전에 적합한만큼 엄동설한에도 목숨을 부지하였으며 조금 뒤 한당에게 구출되었고 왼쪽에서는 한당 장흠이 오른쪽에서는 주태와 진무가 조조를 공격하였고 한복판에서는 주유정보서성 정봉이 대선단을 이끌고 군사들을 도왔다 감녕을 채중을 앞세워 오림으로 쳐들어간다음에 채중을 죽이고 군량에 불을 붙였으며 곧바로 여몽이  달려나와 감녕을 도왔다 조조는 장료와 함꼐 군사 100여기만 거느리고 탈출하여 문빙을 구출한 모개의 10기의 군사와도 합류하여 오림으로 후퇴한다 그러나 오림에서는 여몽이 기습해오고 이에 장료가 맞서지만 산골짜기에서 능통이 기습해온다 그러자 거황 마연 장의가 군사 3000여명을 거느리고 달려와 막아보지만 10리도 못가서 감녕이 달려와 마연과 장의를 죽이고만다 그리고 육손과 태사자가 합세하여 조조를 공격하자 조조는 이릉으로 후퇴하여 장합과 합류하지만 조운이 기습해오자 서황과 장합을 보내 맞서 겨우 찰출하여 이전과 허저 모사들도 합류한다 조조는 이릉으로 가던중 호로곡에서 잠시 머무르지만 그곳에 매복하고있던 장비가 기습하고 이에 허저가 맞섰으나 조조군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있던상태였고 100만에 달하던 대군도 화용도 인근에서는 100여명만 남아 조조를 따르고 있었다 도대체 매복을 몇번을 당하는건지 하지만 화용도에서는 그곳에 매복해있었던 관우가 나타나고 이에 조조는 관우에세 목숨을 구걸하고 겨우 남은 군사 27명을 이끌고 남군 근처에서 조인과 합류하여 남군성으로 간뒤 번성으로 도망간다 이튿날 조조는 남은 군사들을 수습하여 허창으로 돌아가고 조인에게는 남군성을 하후돈에게 양양을 장료와악진 이전에게는 합비를 맡긴다 오는 여세를 몰아 형주를 탈환하기로 결정하고 주유는 모든군대를 동원하여 형주의 조조군을 공격하고 1년간 조조와 손권군의 남국전투와 합비전투가 벌어진다 이번글은 여기까지 작성하고 다음에는 적벽대전의 실제와 허구논란과 남군전투 합비전투와 같은 것들을 알아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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