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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이야기

제갈량의 북벌에 대한 이야기

by 이은주 2021.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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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글까지는 삼국지에 나오는 극 초반의 내용을 다루었다면 이번글은 제갈량의 북벌에 대해서 글을 작성할것이다 보통 삼국지 후반기에 갈수록 사람들의 관심도가 보통 떨어지기도 하고 나도 그랬다 그래서 잘모르는 부분이 많은 촉의 북벌에 대해 다루려고 한다 북벌이 몇번에 걸쳐 일어났는지 긴마민가 하기도 하고해서 좋은 기회가 될것같다 제갈량의 북벌은 227년부터 234년까지 촉한의 승상인 제갈량이 추진한 군사 정책으로 촉한은 후한을 계승한 왕조이기 때문에 후한을 무너뜨린 위나라를 정벌해야한다는 유비의 사명을 제갈량이 계승한다는 명분아래 시행되었다 명분상은 그런 이유였고 실질적으로는 유비 때부터의 대전략인 융중대가 형주공방전과 이릉대전의 결과 폐기 됨에 따라 북쪽의 옹주와 서량을 정복하는 옹양주 겸병을 목표로 삼은것이었다 형주공방전과 이릉대전 같은 경우는 내가 최근에 글을 작성한 적이 있어서 잘 알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옹양주 겸병은 실패로 돌아가고 제갈량은 북벌 도중에 사망한다 그럼 촉의 북벌의 배경에 대해서 먼저 알아보겠다 기원후 227년 당시 중국 대륙은 위나라 촉나라 오나라로 분열되어있었다 제갈량이 초반에 유비에게 말한 천하삼분지계가 된것이다 대륙의 서남쪽에 위치한 촉나라가 북쪽 즉위나라를 공격하고자 하는 계획은 20년 전인 기원후 207년까지 올라가게 된다 당시 27세의 제갈량은 유비에게 대전략 융중대를 제시하였가 여기서 제갈량은 위나라의 부수도 격 위치인 장안과 낙양을 각각 익주를 통하여 서쪽에서 형주를 통하여 동쪽에서 동시에 압박하는 복안을 내놓았다 유비가 215년에 익주를 차지하고 난뒤 융중대의 기본 전제조건은 모두 준비완료되었다 개인적으로 이때가 유비의 전성기라고 할수 있을것 같다 무언가 거침없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형주를 둘러싼 손권과의 분쟁이 일어났고 유비군의 형주 방면 사령관이던 관우가 북쪽을 공격하는 사이 이때가 번성전투이다 그때 손권이 유비를 배신 유비 세력은 219년 형주공방전에서 형주를 상실한다 유비는 형주를 되찾기 위하여 손권을 공격했다가 대패하고 죽고 이를 이릉대전이라한다 제갈량은 223년 손권과의 외교를 회복하였으나 기존의 계획은 폐기가 불가피해졌다 227년에는 많이들 들어본적이 있는 출사표에서 제갈량은 유비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유선에게 촉의 수도 성도에서 나서는 이유를 논증했다 마땅히 삼군을 거느리고 북으로 나아가 중원을 평정시켜야 할것이옵니다 늙고 아둔하나마 있는 힘을 다하여 간사하고 흉악한 무리를 제거하고 대한 황실울 다시 일으켜 옛 황도로 돌아가는것만이 바로 선황제꼐 보답하고 폐하께 충성드리는 신의 직분이옵니다 여기까지 북벌에 대한 출사표의 일부분이었고 여기서의 적은 위나라라고 볼수있다 제갈량의 북벌은 5차까지라고 보통 보는대 그 후의 북벌도 몇번 더 있긴하다 그럼 본격적으로 북벌에 대해 알아보면 1차 북벌은 한중에서 제갈량은 여러 장교들과 회의를 열었다 장군 위연은 자오도를 주장하며 자신에게 정예병 10000여명만 주어지면 장안을 급습하고 제갈량의 본대가 도착할때까지 버틸수 있다고 하였으나 보다 신중한 접근을 선호한 제갈량은 위연의 제안을 기각하였다 이게 흔히 알고있는 자오곡 계획인데 터무니없이 보일수 있어도 촉의 멸망을 생각해보면 나름 괜찮은것 같기도 한게 나의 생각이다 228년 봄 조운이 이끄는 소수 병력이 야곡도를 통하여 미현을 급습하였는데 이것은 양동이었고 실제는 기산로를 통하여 위나라의 서쪽 끝인 천수와 안정을 공략하는것이었다 이에 위나라는 황제 조예가 몸소 장안성으로 가서 방어태세를 갖추고 대촉방면 사령관 조진이 미현에서 조운을 영격하였으며 장합에게 기보병 혼성부대 50000여명을 딸려 제갈량의 본대를 상대하도록 서쪽으로 파견하였다 한편 남동쪽에선느 제갈량과 내응하려고 한 맹달이 사마의의 신속한 기동전술에 의해 허를 찔리고 진압당했다 촉군은 선봉대를 보내어 기산로 북단의 중요 보급거접인 가정을 선점하고 본대가 올떄까지 장합군을 막아내기로 했는데 촉군 선봉 마속은 산꼭대기에 진영을 설치하는 실수를 하였다 이후의 북벌들을 생각해볼때 이때의 마속의 실수는 촉의 입장에서 매우 뼈 아픈것이었다 장합은 이것을 놓치지 않고 촉군을 포위하여 말려 죽였고 왕평이 이끄는 소수 병력을 제외한 촉군 선봉대는 궤멸되었다 기성의 위연이 가정을 구원하기 위해 북상했지만 상규의 곽회가 몰래 뒤를 따라 가정의 교두보인 열류성을 점거하였고 위연의 후발대는 발이 묶였다 계획이 엎어지자 촉군은 가정을 포기하고 남하했고 그동안 미현에서 양동하던 조운도 퇴각했다 제갈량은 패전책임을 지고 스스로 승상직에서 물러나 우장군으로 계급강등하였고 마속은 책임을 물어 목이 달아났는데 여기서 나온것이 읍참마속이다 후계자로 생각하고 마속을 아끼는 제갈량의 입장에서는 매우 힘들었을것이다 하지만 이때 당시에 천수지격 호족인 강유가 촉군에게 내응하기로 하고 난을 일으켰는데 촉군에게 패하자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대로 망명하여 촉군이 되었다 재능이 뛰어난 인재를 얻게 된것이다 여기까지가 1차 북벌에 대한 내용이고 2차 3차 4차 5차 북벌이 더 있지만 글이 길어지는 듯하여 여기서 마무리하고 다음글에서 남은 북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어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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