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글에서는 제갈량의 북벌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해보았는데 간략한 내용 배경 그리고 1차 북벌에 대해 다루어보았는데 이번글에서는 나머지 북벌 2차 3차 4차 5차에 대해 글을 작성할것이다 2차 북벌부터 시작하겠다 제 1차 북벌이 실패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오나라와 위나라가 석정 전투에서 한번 붙었고 동부전선 강화를 위하여 위나라는 서부의 군사를 상대적으로 덜어내어 동부로 이동시킨다 촉은 이를 기회로 파악하였고 228년 음력 12월 제갈량은 이번에는 속전속결을 위해 상대적으로 짧은 기곡도를 통하여 진창을 공격한다 진창은 위나라의 서쪽국경인 서량과 대촉 사령관인 조진이 주둔하고 있는 미현 사이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그래서 위나라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였다 당시 진창성에서는 학소가 약 1000여명의 병사를 데리고 주둔중이었는데 여기서 여러 매체에서 매우 성을 잘 방어한 인물로 알고있다 촉군이 20000에서 100000명이라는 압도적 군세로 밀어붙였음에도 학소는 항복하지 않고 방어에 성공한다 촉군은 운제 충차 정란 등 온갖 공성병기를 동원하였으나 운제는 불화살로 태우고 충차는 돌절구를 던져 부서뜨리는 등 학소의 위군은 끈질기게 막아냈다 평소 연노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생소한 공성병기를 알게 되어 좋았다 3주 뒤 장합이 지원군을 이끌고 도착하자 군량이 떨어진 제갈량은 한중으로 퇴각한다 장합의 부장 중 한명인 왕쌍이 퇴각하는 촉군을 쫓다가 매복에 걸려 죽었다 제법 이름 있는 인물이 아쉬운 죽음이었다 그럼 2차 북벌에 이어진 제3차 북벌은 어떠하였을까 229년 촉의 주요 사령관 중 한명인 조운이 죽었다 삼국지 초기부터 활약한 인물이 죽은것이다 봄이 되자 촉군은 이번에는 무도와 음평을 공략하기로 하고 진식을 파견한다 상규에 주둔 중이던 곽회가 진식을 견제하려 하였으나 제갈량이 무도 북부의 건위로 향한다는 소식을 듣자 퇴각한다 곽회는 퇴각하면서도 천수에 방어선을 구축해 놓았고 건위에 도착한 제갈량은 군사를 멈추고 상황을 살피면서 장기 주둔하기로 한다 그러나 위나라는 무도와 음평에 구원군을 보내지않았고 이 2개 군은 촉에 귀속된다 무도와 음평을 획득한것을 이유로 제갈량은 다시 2계급 상승하여 승상직에 복귀했지만 그 전략적 가치는 크지 않았다 위나라가 퇴각하면서 일대의 주민과 가축을 몽땅 데려가 버렸기 때문에 무도 음평에 주둔한 촉군은 인력과 식량의 부족에 시달렸고 제갈량은 다시 한중으로 돌아가게된다 확실히 전쟁에서는 식량이 승패에 영향을 주는 매우 큰 요소인것같다 229년 겨울부터 230년 봄에 걸쳐 위나라의 설욕전이 시작되었다 조진이 얼마전에 죽은 조휴를 대신하여 대사마로 승진했고 조진이 맡고 있던 대장군직에는 사마의가 올라왔다 위나라는 수세적 태세를 전환하여 공세에 나섰고 조진이 야곡토를 통해 장합이 자오도를 통해 곽회가 기산로를 통해 한중을 공격하였다 형주 완성에 주둔중이던 사마의도 서진하면서 산을 넘었다 촉나라도 이를 좌시하지않고 한중 평야에 길이 200킬로미터의 방어선을 구축하고 10만여명의 병력을 배치했다 위나라는 230년 가을 40여만명의 병력을 몰고 쳐들어 간다 이에 위연과 오의가 위나라 영토의 비한족 이민족들을 선동 포섭하기 위해 기보병 혼성부대를 이끌고 방어선을 넘어갔다 그러나 심각한 호우가 30일 이상 계속되어 진령산맥의 좁은 계곡들 대부분이 건널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한달하고 반달동안 진격이 지지부진해지자 위나라는 공격을 포기하고 퇴각한다 한편 방어선 너머로 갔던 위연이 복귀하다가 곽회와 마주쳤고 장합의 지원군이 오기전에 곽회를 쳐부수고 한중으로 개선했가 반골의 상이던 뭐던 위연의 능력은 출중하였다 여기까지가 3차북벌이었고 제4차 북벌은 제갈량은 231년 초 선비족과 강족에게 사신단을 보내어 위나라 영토에서 준동할것을 지시한다 그해 여름 대사마 조진이 병사하고 표기대장군 사마의가 대사마직을 이어받는다 앞서 곽회가 위연에게 깨져서 기산로에 돌파구가 생겼기에 제갈량은 기산로의 상규를 공략하고 사마의는 대릉과 비요에게 400여명의 병력과 함께 상규를 지킬것을 명령하고 자신은 본대를 이끌고 장안에서 출발 기산을 햐했다 제갈량은 사마의가 도착하기전에 상규를 제압하기 위하여 몸소 기산으로 향한다 그리고 기산을 점령한뒤 사마의와 격전을 거둔뒤 대승을 거두어 중원 정벌이 눈앞에 있었으나 뜻밖에도 부하중 누군가가 배신하여 어이없는 헛소문으로 제갈량은 결국 성도로 돌아갔다 아쉬운 4차 북벌이었다 제 5차 북벌은 제갈량은 사망전 마지막으로 중원을 점령하겠다는 마음으로 5번째로 중원을 침략하였다 먼저 제갈량은 오장원으로 가서 그곳을 점거하고 위수 남쪽에는 맹염에게 진을 치도록하였다 사마의는 맹염의 부대를 쳤으나 이기지 못하고 제갈량은 둔전을 시행하면서 북원을 지나 가정 천수를 공략하는 계책을 세우고 무공과 장안을 칠것처럼 꾸몄다 그러난 곽회는 다른 제장들과 달리 이를 간파하였으며 결국 제갈량은 이기지 못하소 장기적으로 대치하다가 병이 약화됨에 따라 결국 제갈량은 숨을 거두고 만다 그 대단한 제갈량이 이곳에서 잠든것이다 한편 6번째 북벌의 실패로 촉한은 일단 성도로 물러갔는데 이 과정에서 양의와 위연의 내분이 일어난다 여기까지가 제갈량의 북벌에 대한 내용이었다 삼국지 후반으로 갈수록 잘 모르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북벌 같은 경우에도 후반부에 해당하고 위에 작성한것 처럼 조운마저 죽어서 이름이 익숙한 장수는 많이 남아있지 않는 상태에서 흥미가 떨어질텐데 나도 그러한 경우고 어쨌든 이렇게 글을 작성하면서 북벌에 대해 자세히 알수 있어서 좋았다 그럼 글은 여기서 마무리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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