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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이야기

황건적의 난의 경과와 여러전투

by 이은주 2021.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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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글에서는 십상시의 난에 대하여 알아보았고 이번글에서는 삼국지의 첫 배경으로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황건적의 난의 경과와 몇몇전투에 대하여 알아볼것이다 황건적의 난은 평소에 크게 관심은 없었지만 이번 기회에 잘 알수 있을것 같다 황건적의 난은 중국 후한 말기 호족 지주에 의한 토지겸병의 위기에 끊임없이 직면해있던 농민이 황건적이 되어 일으킨 반란이다 역시 반란은 나라가 힘들었을때 일어나는것이다 외척이나 환관의 전횡으로 인하여 부패한 정치 밑에서 한층 더 곤궁을 당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는 미신적인 민간신앙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현세구제의 종교가 유행하는것은 자연스러운 추세였다 삶이 힘들때 종교에 의지하게 되는것은 이때도 마찬가지였던것 같다 그럼 지금부터 황건적의 난의 경과에 대해 알아보겠다 태평도 창시 후한 영제떄에 거록의 장각은 스스로 대현량사라 호를 짓고 황천의 신의 사자라고 일컬으면서 병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치료를 하기 시작하였다 장각은 스스로 아홉마디가 나있는 지팡이를 짚고 설교하고 다녔는데 170년대 초 무렵부터는 제자를 사방에 파견하여 포교에 힘썼다 이같은 교리는 빈곤속에서 질병에의 공포와 불안을 품고 있던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아 10여년 사이에 화북의 동반부로부터 양쯔강 유역에 걸쳐 수십만명의 신도를 얻어 일대 교단으로 성장하였는데 이 교단의 이름이 태평도이다 태평도는 주술에 의한 요병을 중심으로 하고 한대에 유행한 참위설음양오행설 등과 잡다한 민간 신앙을 가미하고 다시 도가의 설로 윤색한것이다 장각은 이 신도들을 36개의 방으로 조직하였는데 이조직은 빈민의 반권력적인 성격과 결합하여 군사적인 조직이 되기도 하였다 즉 장각은 천공장군이라 호를 지어 최고위에 앉고 2명의 동생 중에서 장보는 지공장군 장량은 인공장군이라 일컬었으며 1만 명 전후의 신도로 이루어지는 방의 책임자로는 장각의 제자가 선출되었는데 그들은 신도로부터는 사라 불림과 동시에 방은 그대로 장군이름으로 불렀다 이러한 태평도는 후한 정부로서는 커다란 위협이었고 그것은 현실이 되었다 정부는 탄압책을 강구하여 해산명령을 내렸으나 이것은 도리어 신도의 단결과 교단의 조직을 강화시키고 반권력적인 성격을 강화시켜 주는 결과가 되었다 그 다음 봉기를 이야기 해보자면 장각은 한제국의 창천대신 황천의 세상을 실현해야 한다고 하면서 민중을 선동하여 봉기를 일으켰다 당초 반란이 일어난 이유는 고위층의 부패와 민생의 어려움 때문이었으나 장각은 얼마 후 스스로 천공장군을 자칭하며 천자가 될 야심을 품었다 그리고 백성들을 약탈한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점을 보면 자기가 처음에 생각한 사상과 반대로 가는것같기도 하다 어쨌든 이러한 결과로 진압군이 편성되었다 황건적의 난은 후한 전국 13곳에서 일어나고 이에 후한 황제 영제는 외척이자 대장군 하진과 대책을 의논한다 이리하여 옛 유비의 스승이었던 노식과 황보숭 주준 등 3명의 장수가 황건적과의 전투부대로 평성되고 조조도 기도위에 임명되어 황건적 토벌에 나선다 한편 강돈의 손견도 하비에서 부하 황개 한당 정보 조무와 함께 1500여명의 군대를 이끌고 토벌에 참여한다 이들장수 대부분이 손권대에까지 활약하는 인물들이다 그리고 유주의 탁현에서는 유비가 장비 관우와 함께 의형제를 맺고 수백명의 장정들을 모집하여 모집한 용사 500여명을 이끌고 토벌에 나선다 지금부터는 이어서 여러 전투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먼저 유주성 전투는 의병을 일으킨 유비는 유주성으로가 유주태수 유언을 만나고 얼마 뒤 황건적 대장 정원지가 5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자 유비는 의병 500여명을 이끌고 유주의 관군 대장 추정과 함께 유주성 앞에서 대치한다 정원지는 부장 등무를 내보내어 맞서게 하였지만 유비의 의형제 장비에 의해 베어진다 이에 정원지는 직접 나서지만 오히려 관우에 의해 목이 베인다 대장 정원지가 쓰러지자 황건적들은 우왕자왕하고 유비형제는 황건적을 무찌른다 적은 인원으로 대단한 성과를 이룬것이다 유주성 전투 후 다음 날 황건적에게 성이 함락될 위기에 처한 청주 태수 공경의 편지가 도착한다 유주 태수 유언은 교위 추정을 시켜 군사 5000여명을 보내어 유비와 함께 청주의 황건적을 무찌르게 한다 청주성에도착한 유비는 황건적들을 끌어들여 계곡으로 유인한 뒤 무찌른다 공경도 군사를 내어 황건적을 앞뒤로 포위하여 무찌르고 유비군은 큰 승리를 거둔다 유비는 광종으로 노식 장군을 도우려가지만 노식의 의견으로 1000여명의 병사들을 내주어 황보숭과 주준을 도와주려 영천으로 향한다 이어서 영천전투느 예주 영천의 산골 장사현에서는 한나라 관군대장 황보숭과 주준이 황건적을 토벌하고 있었다 주준은 첫 전투에서 황건적의 대군을 이끌고 있는 파재와 싸우지만 패배하고 주준이 장사에서 농성으로 들어가자 파재는 이를 포위한다 그러자 주준은 황보숭과 함꼐 장각의 동생 장량과 장보의 합류한 파재를 화공으로 공격하여 무찌른다 장량과 장보는 형 장각이 있는 광종으로 도주하여씅나 도중에 조조를 만나 1만여명의 전사자를 내고 6월에는 팽탈의 황건군은 다시 격파하였고 남은 황건적들은 예주 자사 왕윤이 이끄는 별동대와 관군의 협공으로 격파당하면서 예주의 황건적은 모두 평정한다 유비는 뒤늦게 전투 후에 도착하여 황보숭과 주준의 명으로 다시 노식이 있는 광중으로 돌아간다 유비군도 쉴틈없이 참여했던것 같다 광종전투 그러나 유비는 광종으로 가던 도중 노식이 뇌물을 거절해 모함을 받아 중량장 자리를 빼앗기고 끌려간다는 소식을 듣는다 결국 유비는 탁군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하고 노식에게서 받은 1000여명의 군사를 돌려보내고 탁군으로 향한다 그러다가 탁군으로 가던 도중 황건적의 우두머리 장각에게 쫓기던 노식에게 중랑장 자리를 빼앗은 중랑장이자 서량자사 종탁을 도와준다 그러나 동탁은 유비가 벼슬이 없는것을 알고 무시하고 주준에게로 갔다 글이 길어지게 되어 황건적의 난과 여러전투는 다음글에는 광종전투를 시작으로 해서 마무리 하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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