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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제국에 대한 두번째 글 저번 글에서는 잉카제국에 대하여 글을 작성하였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잉카제국에 대한 글을 이어서 쓸 것이다 그럼 시작해보겠다 잉카의 9번쨰 왕조 파차꾸끼 잉카 유빵끼가 1445년 띠띠까까 지역을 정복했다 파차꾸띠 잉카 유빵끼는 잉카의 문명과 정복지역의 문화를 잘 융합하여 발전시켰다 이름은 참 어려운듯하다 치무 문명이 그의 좋은 예이다 파차꾸띠는 왕실의 인재들을 훈련시켰다 그는 청동 전투 도끼 끝은 돌이나 청동으로 장식된 나무 막대 투석기 창 던지는 창 활과 화살 가죽으로 덮어씨운 나무방패 면이나 등나무류로 만든 헬멧 그리고 누빈 갑옷으로 군대를 중무장 시켰다 군대의 무기는 중요한것으로 잉카 공직자들은 각각의 함락된 지역에 파견되었다 함락된 지역관리자의 아들을 인질로 잡아 꾸스꼬로 데려 감으로써 각 지역.. 2019. 9. 17.
잉카제국에 대해 알아본 글 이전까지는 세계 4대문명을 알아보았는데 이번에는 무언가 궁금했던 문명이었던 잉카문명에 대한 글을 한번 써보기로 하였다 미지의 문명이라고만 생각하는데 한번 글을 시작해보겠다 잉카제국은 타완탄수유는 콜럼버스 이전의 아메리카에서 가장 거대한 제국으로 제국의 군주 칭호는 사파잉카라 했으며 이 군주 칭호를 따서 서양에서는 잉카제국이라 일컫기도 하였다 서양에서 알려진 상황인듯하다 잉카제국의 행정 정치 군사의 중심은 지금의 페루인 쿠스코이다 이 제국은 13세기 초 페루의 한 고원에서 기원하였으며 1438년에 본격적으로 역사시대를 맞이했다 1438년부터 1533년까지 약 100년동안 잉카는 잉카의 무력정복과 평화조역을 적절히 사용하는등 다양한 방법으로 현재의 페루 에콰도르 남서 중앙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칠레 콜롬비아 .. 2019. 9. 17.
장강문명 이어서 알아보기 저번글까지 장강문명에 대해 글을 써보았는데 이번에는 장강문명에 대한 문화에 대해 몇가지 더 알아보고 황하문명에 대한 나머지 내용 정리 후 마무리하고 세계4대문며에 대한 이야기 정리를 마무리 할 예정이다 그럼 시작하겠다 쑹저 문화는 상하이 시 칭푸 구 쑹쩌 촌에서 발견된 유적으로 기원전 3800년경에서부터 기원전 3500년경의 유적으로 추정되는데 그 당시에 구슬로 만든 팔찌 등의 장식풍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두번쨰 랑주문화는 저장성 위항 구 랑주 진에서 애서 발견된 기원전 3500년에서 기원전 2200년경의 유적으로 마자방 문화 송저 문화를 계승했다 다수의 옥기 외에도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비단이 출토되었다 분업이나 계층화가 진행되었다는것을 보여주며 대부분 알것이라고 생각하는 순장을 시킨 무덤이 발견되었.. 2019. 9. 12.
장강문명과 여러가지 문화 저번글에는 황허문명에 대하여 글을 썼는데 이번에는 이어서 장강문명에 대해 서술해보고 나머지 황하문명의 배경에 대해 작성할 것이다 장강문명의 발견의 20세기 전반에 황하 문명의 양사오 문화가 발견된 이래 황하 유역에서 많은 유적이 발견되었으며 역시 유적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중국 문명의 발상은 황하 유역이며 그 후 점차 장강 유역 등의 주변지역으로 확대되었다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나도 이렇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1973년 1978년의 발굴조사에서 발견된 저장성 위아오 시의 하모도 유적에 의해 이 설은 뒤집어 졌다 하모도 유적은 기원전 6000년 에서부터 기원전 5000년경으로 추정되어 대량의 볍씨 등의 벼농사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벼농사를 짓고 있었기 떄문에 그 주거지형식은 고마루식이었다 이와 같이 하모도.. 2019. 9. 12.
인더스 문명과 유물 저번글까지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대해 글을 작성하였다 오늘은 이어서 세계4대문명에 속하는 인더스문명과 유물에 대해 알아보겠다 인더스 계곡 문명 인더스 벨리 시빌리제이션은 기원전 약 3300년부터 1700년에 있으며 기원전 26000년에서 1900년경에 흥했던 문명으로 오래전에 있었던 인더스 강과 현재 파키스탄과 북서쪽 인도에 걸쳐있는 가가 하크라강 사이에 있었다 처음 발굴된 유적지가 하라파에 있었기 떄문에 가장 부흥했던 시기는 하라파 문명이라고 부른다 기원전 1600년경부터 인더스 강의 범람 삼림 파괴 등으로 쇠퇴하게되었다 이것이 너무 아쉬운 점이다 하지만 1920년대부터 지금까지 발굴은 계속되고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전에 써온 몇가지 글에서의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활발히 교류해서 메소포타미아 .. 2019. 9. 11.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사회 종교 문자 저번글에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대한 이야기를 서술했는데 이번에는 이어서 메소포타미아의 사회 종교 문화 역법에 대하여 글을 작성할것이다 첫번째로 메소포타미아의 사회는 수메르 인의 문명이 토대가 되었고 아카드아무르 인들의 문명이 가미되었다 화폐는 쓰이지 않아서 물물교환이 이루어졌다 당시 수메르의 정치사회구조는 귀족 평민 노예로 구성된다 왕 왕족 고위관료 고위 성직자들로 구성된 귀족들은 정치 권력과 거대한 토지를 소유했고 높은 신분을 유지했다 예전부터 신분제는 존재하였음을 알수있다 한편 평민들은 토지의 소유나 처분이 가능했고 신분을 살수있었다 전쟁 포로나 외지인 범죄자 그리고 채무자들 대부분은 노예였다 특이한 점은 채무 떄문에 노예가 된 사람은 3년 후에 일반인으로 복귀가 가능했다는 점이나 이것은 우리 역사와.. 2019. 9. 10.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기타 저번글에 이어서 이번에는 이집트에 스핑크스에 대하여 다루고 그 다음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대해 차례로 서술할것이다 스핑크스는 사자의 몸에 사람의 머리가 달린 우리가 많이 들어본 상상속의 동물이다 이 괴물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동남아시아 등 지역의 설화에서 찾아볼수있다 일반적으로 스핑크스는 카프레가 건설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건설 이후 한동안 모래 에 파묻혀 있었다 훗날 이집트의 투트모세 4세가 왕자 시절 머리부터 발 끝까지 모래에 파묻힌 스핑크스 옆에서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스핑크스가 투트모세 4세에게 내 몸을 덮고 있는 모래를 다 걷어주면 너를 파라오 즉 왕으로 만들어주겠다 라고 말했다 설화쯤 되는것 같다 투트모세는 즉시 잠에서 꺠어나 모래를 꺠끗이 걷어내고 훗날 왕이 되었다 기자의 대 스핑크스는.. 2019. 9. 10.
이집트 문명의 유적지 저번글에는 세계4대문명에 대한 간략한 글과 이집트 문명에 대해서 글을 썼다 이번에는 이어서 남은 유적과 평소에 관심있던것에대해 알아볼것이다 우선 이어서 투탕카멘 왕의 보물은 1922년 왕가의 계곡에서 하워드 카터가 발견한 그의 왕묘에서 부장품으로 나온것이다 그의 제위기기나 기원전 1354부터 1345까지 로 짧았으나 그의 묘는 완전히 보존된 유일한 것이기도 하였다 피라미드의 고마움인것같다 이 보물은 공예적 가치가 높고 금을 대량으로 사용한 점이 눈에 뜬다 특히 귀금속 공예 미라의 마스크 같은 보석류 세공 목공예 침나나 의자와 같은 상아 세공 석제 용기 등이 중요한것이었다 하지만 귀금속 공예는 중왕국 시대의 것이 더 우수한 것도 있다 물론 이것보다 더욱 더 많은 뮤물도있다 두번쨰로 아부 심벨 신전이다 아부.. 2019. 9. 10.